우울증 극복 에세이
요즘 몇몇 친구들은 번아웃이 왔다고 말한다. 나와 친한 친구는 나에게 미래에 폐지를 주우러 가거나 한강 다리에 같이 가겠냐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친구의 눈을 바라보면 농담이 아닌 것만 같다. 슬픔과 허무함이 서려있다. 예전 같으면 같이 가자고 맞받아 농담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런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 괜찮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솔직히 친구가 걱정된다. 오늘은 방학식이지만 내일 다시 학교 8교시를 보내야한다. 진짜 방학은 다른 주에 있다. 앞으로 한 교시 더 늘어난 학교생활을 어떻게 버텨나가려고 그러는지 걱정된다. 그 친구는 나 처럼 힘든 것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저 조용하고 밝은 아이로 보인다. 나도 그 애도 꼭 잘 살아서 나중에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여행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우리 둘 다 극단적인 농담을 하지 않겠지. 힘들지만 살만 하다고 정말 살다보니 이런 저런 일도 다 있다고 얘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힘들었을때, 자해를 했을 떄, 자살시도를 했을 때, 담임선생님께 알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각오는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나를 첫 인상대로 보시지 않겠지. 미소 뒤에 항상 내게 말을 어떻게 하실지 고민하실거고, 부담스러우시겠지. 엄마 말대로 내가 별난 걸까. 우울증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면 친구들이 없어진다.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 힘들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속으로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더라도 원래 처럼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중학교 때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 대해 나는 어떤 기대도, 행동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가 힘들었을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조차 나를 피할까봐, 그게 우려되는 점이다. 담임선생님께는 졸업하기 전에 장문의 편지를 쓸 생각이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내겐 어찌됐건 참 고마운 분들이다. 다행히 선생님 복이 있는 편이라서 그나마 이 정도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허무하고 슬픈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기에 조금은 더 성숙한 척을 해보려 한다. 그러다보면 내 상처는 잊고 나는 경험자로 남을 수 있겠지. 세상에 유익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겠지. 더 이상 조그만 것들로 심하게 흔들리지 않겠지. 뭐든지 과하면 안된다고 했다. 따라서 나는 내 감정에 대한 조절을 해보려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 같다. 충분히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