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에세이
수요일마다 동반자 상담 선생님이 오신다. 상담을 하다보면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그건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선생님이 오시기 전 내게 말했다.
엄마 : 연명아, 동반자 상담 선생님이 니가 내가 ~~한 말을 해서 상처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언제 그랬니?
나 : 엄마, 엄마는 기억 안 나실지 몰라도 저는 그 말을 들었어요. 분명히. 엄마도 저한테 맨날 자기가 한 말 기억 못한다고 막 그러시지만 엄마도 그럴때가 있으신 거에요.
엄마 :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나는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들이 이렇게 물어볼때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줄 아니?
나 : 엄마 우리 더 이상 얘기하지 마요. 제가 선생님하고는 잘 얘기해볼테니까 걱정 마시구요.
엄마 : 연명아, 엄마 얘길 하지 말고, 니 얘길 해 제발.
나 : 더 이상 말 걸지 말라고요!!
생리가 곧 다가오거나 시험기간이 되면 나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일들도 눈물을 흘리게 되고, 화를 내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걔다가 상담 전에 오빠는 자신의 컴퓨터를 떡하니 치우지도 않고 거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쫄아서 오빠한테 찍소리도 못하는데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오빠 좀!! 컴퓨터 왜 안 치워!!" 그때 마침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오빠랑 한 판 붙을 뻔했다. 나는 여느때와 똑같게 정신과 선생님께도, 담임 선생님께도, 그리고 지금 동반자 선생님께도 절대 엄마하고 통화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선생님들께 전화받는 걸 극도로 싫어할 뿐더러 선생님들과 말로 자주 싸우시곤 했다. 그럴때 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워져서 엄마에겐 아무말도 하기 싫어졌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어떤 말도 하기가 싫다. 지치고 힘들다. 지금 겨우 마음을 다잡고 혼자서 추구하는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선생님이 나와 상담을 하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선생님 : 너가 전학을 와서 일이 잘 풀렸으면 외고에서의 친구들과 생활들이 그립지 않았을 건데, 그렇질 못하니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후회를 하고 힘들어하는 거 아닐까?
연명이 : ........
나는 울어버렸다. 머리로는 이미 다 놓은 줄 알았다. 과거의 기억을 놓고 현재를 이젠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여전히 외고의 친구들의 사진이 카톡 프사에 올라올때면 눈물이 났고, 그냥 인사치레의 말들을 받아도 눈물이 고여서 참고 답장을 하곤 했다. 놓지 못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후회하고 있다. 선생님은 이런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못한다고 해서 그 모습이 내가 아닌게 아닐 뿐더러,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놓을 줄 알아야한다는 말씀이셨다. 머리로는 놓았는데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 하는 말, 친구들이 하는 말, 행동들 등에 자꾸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게 아닐까. 자기확신이 떨어지고 스스로를 미워했던 것도 그것과 관련됐던 것 같다.
필기시험을 합격한 특성화고 학생이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뉴스가 있었다. 다른 경쟁자는 부정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학생은 결국 자살했다. 엄마와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 상황에서 그냥 주저앉으면 죽는 거고, 이 회사 말고는 갈데가 없을 줄 알고 이런 당당한 마인드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 거고. 이겨내느냐의 문제지." 엄마가 말했다. "맞아, 그 애는 만약 다른 난관을 맞이하게 됐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꺼야." 난 오빠와 엄마한테 냉혈한이라고 했다. 엄마와 오빠는 내가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아직 세상 맛을 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마음 한 켠이 시려왔다. '어떻게 저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할 수 있지? 사람이 죽었는데.' 그리고 이윽고 깨달았다. 엄마 오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사회는 짧은 기간동안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저렇게 말을 하겠지 하면서도
과연 이런 불평등을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 궁금했다. 지금 세상 사람들도 다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겠지. 나도 과연 어른이 되면 그렇게 될까? 마음이 시리다. 마치 서리꽃이 심장에 필 것 같다. 그 꽃은 점점 단단해져 내 심장 전체를 잠식하고 얼려버릴 것만 같다. 아마 이게 사회를 나가기 위한 준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