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커다란 구멍

그만 아프고 싶다

by 칼미아

본가에 내려가면 나는 돈 먹는 하마가 된다. 삼남매 중 내게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에 맥도날드에서 엄마가 무너지고 울었던 때의 무게가 아직도 나를 누른다. 몇 달을 혼자서 가지고 있다 동생에게 털어놓았는데 동생은 그럴만하다고 했다. 내가 가장 돈을 많이 썼다고 하고 내가 돈도 무조건 아껴야한다고 했다. 또한 엄마의 그런 말들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 서둘러 동생과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한국판이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남들이 영화를 볼 때 다른 이유로 울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불편함은 다 돈에서 온다. 우리는 파산 직전의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 원인이 자꾸 나인 것만 같아서 화가났다. 돌아가서 내가 학원을 다니지 않고 대학을 들어갔다면 돈이라도 아낄 수 있었을까. 그러고도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은 못 갔는데. 쓸모없는 이야기인 걸 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되돌릴 수 없다. 부모님 카드를 반납하고 알바를 하며 살아가지만 그것도 최근이고 난 모든 게 버겁다. 과거가 자꾸만 나를 파고든다. 여주인공처럼 선행성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리고 싶다. 일기는 안 쓴 채로. 행복하지도 않았던 학원과 전학, 그 때가 나에게 답을 달라고 괴롭힌다. 뭘 위한 거였냐고.

그래서 잊기 위해 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낸다. 나 혼자 잠시나마 잊고 싶은 시시하고 지루한 과거다. 흰티에 묻은 얼룩처럼 닦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나마 어학원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땐 잊을 수 있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시끌벅적한 시간이 지나가면 고시원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부터 시작되는 노잼시기. 돈에게 쫄았고, 비굴했고,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돈을 펑펑 썼다. 매번 그래서 월말에는 허리를 조르고 굶어야 했지만. 번아웃이 왔을 때 나는 온라인 취업 박람회를 신청해서 멘토들의 말을 경청했다. 냉랭한 현실과 방법을 마주하기엔 멘탈이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다시 무기력해졌다.

취업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 내가 자립하려면 취업 밖에 길이 없는데 막막함을 느꼈다. 고시원도 싫었지만 본가도 그 못지 않게 답답했다. 그래도 이 상태가 지속되면 끝이 뭔지 알기에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목을 감싼다. 언제 끊을 수 있을지 모르는 6년에 들어서는 우울증 약 복용. 메말라버린 감정은 무표정만 만들어내고 내 삶의 색이 되어 버렸다. 나름 해 본 마인드 컨트롤 덕에 난 다시 노력할 힘을 얻었다. 1년을 열심히 보냈다. 결과는 좋지 않아도 내가 힘들었던 시간들은 내 안에 남아있다. 내년에 빛을 발할 수 있게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