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의 작은 꿈을 마무리하며...
내 첫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어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대학생으로서의 현실. 이제 2학년이 되는 나는 전공과목이란 게 생겼다.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과목이기에 학원 일정과 부딪혀도 학교 수업을 택해야 했다. 원장님과의 작별 인사는 생각보다 짧고 간단했다. 공허함이 느껴졌다. 처음 이곳에 면접을 보러 와서 설렜던 때를, 나의 초심을 떠올리며 인지왜곡이 시작되었다. 내가 부족한 선생님은 아니었는지, 대학생이어서 학원 강사로는 어울리지 않았던 건지, 학력이 별로인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안 좋게 흘렀다. 그러다가 모두가 나를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우울해졌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내가 예민했던 거였다. 마지막 날에 실장님은 나를 걱정해 주시며 앞으로 돈을 어떻게 벌 거냐고 물어봐주셨다. 나는 엄마가 나에게 준 직장인 코트를 입은 채 슬픔은 숨기고 다른 곳 면접을 이곳저곳 보고 있다고 했다. 카톡으로 일정 조율에 실패해 이 학원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게 확정되었을 때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아빠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보고 대책이 없다했고,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학교랑 일정이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일단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 좋은 상사이자 롤모델과 주변 사람들, 전부 내가 초반에 감사하게 느꼈던 것들이 겨우 7개월 동안에 그저 매일 출근하고 기 빨리고 돈 벌러 가는 행위가 되어 있었다. 그 연장선에 끝을 주듯이 나는 그날 펑펑 울었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일하러 갈 곳, 즉 내 루틴이 사라져서 공허할까 봐 그러다 다시 무기력해질까 봐 두려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다음 날,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내가 잃을까 봐 두려웠던 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효능감과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과의 유대라는 것을,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다. 이별이 갑자기 너무 빨리 다가온 것만 같았다. 매일 나에게 살갑게 인사해 주고 때로는 말 안 듣고, 때로는 나한테 들러붙어 "선생님~" 하며 오는 아이들이 전부 떠올랐다. 까칠했던 아이는 까칠한 채로, 열심히 하는 아이는 그 모습대로 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내가 대학생이라 이건 부업이라고 믿었지만 그동안 나름 내 마음을 갈아 넣었다는 걸. 나도 엄청 노력했다는 걸 말이다. 물론 그 바람에 내 학점은 당장 복구하지 않으면 위태로울 정도여서 기숙사도 떨어지고 더 비싸지만 안 좋은 고시텔로 이사를 갔지만 말이다.
한참 울었던 그날부터 이틀이 지나자, 나는 내가 얻은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내가 간다고 하니 나에게 롤링 페이퍼 같은 칠판을 꾸미며 엄청 많은 인사를 해줬다. 선생님이라고 불린 것도 좋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과 과정, 포트폴리오는 내게 남아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성과에 조급해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 처음이라 많이 부족한 나 자신도 자주 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좋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그 7개월은 나를 성장시켜 줄 가장 좋은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나는 그때마다 많은 고민을 하고 공부를 했다. 물론 학업을 병행하며 멘털과 건강도 많이 깨졌지만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일이었다. 난 울고만 있을 순 없었다. 통신비에 교통비, 월세까지 이제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어학원에서의 경험을 내 김과외 소개서와 다른 구인 사이트에 보완해서 넣고 많은 지원서를 날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좋은 기억으로 남긴 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 보겠다고 말이다. 끝은 항상 아프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기분 좋은 마지막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안녕, 나의 첫 번째 교사 도전, 이제 두 번째로 향할 테니 좋은 기억으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었으면. 그리고 그 안에서 불확실하고 정해진 것 없는 내 20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