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던 것들

알고 싶었는데 이제는 딱히...

by 칼미아

나는 친오빠랑 나이 차이가 꽤 난다. 오빠가 영어 미드를 봤을 때, 나도 기어이 같이 보겠다고 해서 보다가 내가 따라 할까 봐 오빠가 내쫓았다. 그때 오빠가 보던 시트콤은 '프렌즈'였다. 영어공부한다고 보는 것 같았는데 뭐가 웃기는지 어린 나로서는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블랙휴머'에 대해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되고 나니 프렌즈뿐만 아니라 '2 broke girls' 두 명의 돈 없는 소녀들 시트콤 릴스가 뜨고 나와 내 동생은 그 시트콤에 빠졌다. Victorious도 마찬가지다. 동생은 역시 앞에 돈 없는 언니들이 나오는 시트콤보다는 뒤에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빅토리어스를 더 좋아했다. 여하튼 우리는 도대체 이 시트콤들을 어느 ott에서 볼 수 있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했다. 아무리 찾아도 옛날 거라 그런지 안 보인다. 불공평하다. 이제 이해되기 시작한 블랙휴머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신작에 밀려 올라올 수가 없다. 나는 2 broke girls를 보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돈이 없는 건 분명 슬픈 일인데 캐릭터들의 태도 때문인지 그게 웃픈 상황인 게 보이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재미없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 나의 인스타 알고리즘에는 미드 시트콤들이 마구 뜨고 있다. 슬픈 현실을 유머로 나타낸 다크 한 휴머가 너무 취향저격이다.

동생과 취향이 갈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생은 나에게 매달 오 만원씩 용돈을 받아가면서 항상 내게 뭘 사달라고 한다. 돈 없다고 하면 왜 없냐고 좀 아끼라고 해서 주먹을 부른다. 그래서 내가 너는 왜 없냐고 물어보면 친구랑 놀고 옷 사야 해서 항상 다 쓴다고 한다. 나는 동생이 그런 사치를 오래 누릴 수 있도록 이바지해주고 있는 셈이다. 내 나이가 되어서 고시원을 전전긍긍하며 기숙사 떨어지고 돈은 통신비, 월세, 교통비로 스치듯이 사라지는 기분을 알게 될까. 뭔가 많이 느끼고 알게 되면서 나는 꽤 많은 것들에 무던해지기 시작했다. 오빠가 동생에게 졸업선물로 20만 원을 주고 부모님께 나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도 바로 이해가 됐다. 아빠가 바로 spill the beans, 말해버렸지만, 오빠는 내가 졸업했을 때는 대학생이어서 돈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바로 이해가 됐다. 그래서 정말 개의치 않았다. 지금 쪼들리는 느낌이 확 오는데 그 당시의 오빠한테 화낼 수도 삐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오빠처럼 직장인이 되어서 사브리나 카펜터의 thumbs라는 곡에 나오는 가사처럼 남의 돈을 그저 벌기 위한 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 그게 인생의 순리라고 하는데 맞는 말만 해서 현실이 와닿는 가사였다. 심지어 멜로디도 중독성 있어서 계속 듣고 있다. 역시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편으로는 가난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면서 이중생활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작은 행복을 찾고 있다. 마치 시트콤에서 맥스 블랙이란 멋진 언니야 캐릭터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항상 웃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며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것처럼. 그리고 눈치도 안 보는 게 너무 멋지다. 나도 2 broke girls에 나오는 맥스처럼 살아가기로 했다. 그 정도 말발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태도는 그렇게 해보고 싶다. 언젠가 그 시트콤을 DVD로라도 접하게 되면 매일 빌려볼 것 같다. 이해가 되니 재미는 있는데 내 현실이 그렇다고 재밌지는 않다. 나는 인생 노잼시기를 재밌게 만들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니 받아들이는 척한다든지 남 눈치 안 보려고 엄청 꾸미고 다닌다든지 미라클 모닝을 한다든지 별의별 거를 다 하고 있는데 시간이 멈춘 듯 너무 안 간다. 아마 내 시간은 개강과 함께 흐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다 버스에서 내려 출근을 하고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을 마주하면 절실히 느낀다. 알고 싶지 않았던 사회의 쓴 맛을 맛이다. 고객님들은 초등학생이면서 되게 바쁘게 산다. 그게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소홀히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 그저 마음속으로 실성한 듯 웃는다. 하루에 수십 번씩 원장실 문을 두드리고 싶다.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애들을 일러바치면 어떻게 해주실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다 내 능력으로 해결가능하다는 이상한 오기에 져서 다시 다짐을 받아낸다. 얘들도 내 나이가 되면 이러는 걸 후회할까 그저 잊어버릴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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