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폭력이다

아틀라스 이후의 질문

by Anfang
스크린샷 2026-02-24 161833 복사.jpg 드라마 <모범택시>(연출 강보승/극본 오상호/제작 스튜디오S, 그룹에이트,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

드라마 <모범택시>의 한 장면이다. 불법 영상을 유포하는 회사 ‘유데이터’의 회장(백현진)이 직원의 옷을 마구 찢어발긴다. 그러고는 비싼 옷을 사입으라며 두둑한 지폐 뭉치를 쥐어준다. 이에 직원들은 회장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이 재밌는데, “최고의 상사”, “제 것도 찢어주라”는 댓글이 달렸다. 아쉬워 말자. 우리는 이미 노동이라는 폭력을 견디는 대가로 통장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이 폭력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노동은 분명 가치를 만들고, 성과를 내며, 세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 한편에는 폭력적인 요소가 상당히 일반적이고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 굳이 산업재해ㆍ직장 내 스트레스 현황이나 마르크스의 착취 구조를 빌려오지 않아도, 노동이 정신과 신체를 갉아먹는 모습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노동은 자본의 효율성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위에서, 개인의 태생적 지향성을 재단한다. 기계적인 반복 작업, 불필요한 부수 업무, 비합리적ㆍ계산적 프로세스 속에서 각자의 잠재력과 창조 능력, 가치관은 거세된다. 그 고통을 견뎌낸 뒤 받는 월급은 ‘금융치료’라는 씁쓸한 별칭으로 불린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4일 오후 04_37_08.png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노동이 폭력이 되는 순간은 명확하다. 행위의 목적이 타인에게 종속되고 주체성을 상실할 때다. 반면 ‘생산’으로서의 노동은, 자신의 판단과 책임이 개입될 때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은 단순히 재화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다. 재화 자체는 기계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는 기계가 노동을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동은 과정에 관한 것이고, 생산도 과정으로서의 실천에 비추어 이해돼야 한다. 노동자가 생산 과정에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이를 통해 금전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의 지적·도덕적 가치를 만들어낼 때, 노동은 비로소 생산이 된다.


예를 들어 한 공장의 생산 관리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공정을 개선해 연간 2억원의 비용을 절감해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자신이 담임하는 학생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방치하고 먼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틀을 꼬박 달려 그 아버지를 찾아가 아이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부탁했다. 이들에게 노동은 폭력이 아니라, 열매를 틔우는 농부의 파종이었다. 모두 내 두 친형의 이야기다.


사실 좀 한참을 돌아왔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최근 이슈가 된 현대차의 아틀라스다. 로봇 도입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이익 공유’나, ‘직원 재교육 및 재배치’ 등이 거론됐다. 그런데 이러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자칫 기업의 호혜라거나, 노동자의 이익만을 위한 일로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노동이 폭력으로 머물 것인가, 생산으로 전환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력적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왔다. 이제는 노동을 생산으로 만들 조건을 고민해야 한다. 가짜노동을 줄이고, 개인의 주체적 생산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결국 이익 공유는 인간이 기계적 노동에서 벗어나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게 된 것에 대한 정당한 배당이며, 직원 재배치ㆍ교육은 인간이 비로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돈을 위해 옷을 찢기는 직원이 아니라, 자신의 지향성을 세상에 새기는 실천가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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