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선으로 주식을 바라보다
최근 들어 주식(株式)이 우리의 주식(主食)이 되어가는 듯하다. 말 그대로 주식창을 밥 먹듯이 들여다보고, 관련 정보를 찾고 토론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코스피 5000”을 표방하고, 실제로 지수도 급등하자 관심도는 정점을 찍었다.
이 글은 주식 전망이나 분석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분석은 이미 세계의 유수한 전문가들이 탁월한 분석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나는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우리는 주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싶다.
나 역시 사회에 발을 들였던 2년 동안 적은 돈이나마 금융 자본의 은총을 받기도 했다. –30%의 시련을 받기도 하고, 끝없는 답보 상태에 놓일 때도 있다.
투자를 이야기하며 포트폴리오를 숨길 수는 없다. 위는 필자의 전체 주식 투자 수익. 현재는 한 개의 종목만 보유 중이며 해당 종목의 수익률은 2% 내외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고, 올해 코스피 상승률에 비하면 전체 수익률은 미미하지만 ‘평균 수익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또 그리 나쁘지 않다. 수익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투자의 고뇌가 담긴 발자국이라 이해해주십사 한다.
현재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이라는 비전은 낙관적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과 맥쿼리는 한술 더 떠 6000까지도 가능하다고 내다 보았다. 정부와 의회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상법 개정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코스피 강세를 주도하는 조선ㆍ방산ㆍ원자ㆍ반도체에 대한 지원과 국제적 협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김없이 비관론도 고개를 든다. AI 버블 논쟁은 계속되고, 급등하는 환율은 해외 투자자들에게 환차손 우려를 키우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마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주식시장에는 모순된 두 사실이 동시에 성립한다. 낙관론은 충분히 타당하고, 비관론도 합리적이다. 어느 쪽도 틀렸다고 단언할 수 없다. 결국 ‘정답’은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분석은 늘 뒤늦고 불완전하다. 즉, 주식시장은 확실한 진리가 지배하는 질서라기보다, 각자의 타당한 주장들이 끝없이 맞붙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장에서 투자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각자의 믿음ㆍ가치관ㆍ상상력이다. AI는 앞으로도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며, 다양한 수익 모델이 창출될 뿐만 아니라, 현재 주가는 이를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믿음은 매수 버튼을 누르게 할 것이다. 또, 친환경 에너지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효율이 높아지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친환경 주식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평화와 협력보다 전쟁과 무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면 방산주에 좀 더 호의적일 테다.
그 과정에서 기술적 분석과 업계 동향 파악은 어느 정도 방법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는 일이다. 자신의 선택에 반대되는 분석까지 주의깊게 들여다보며 자신의 결정을 점검해야 한다.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과연 내 믿음이 타당한지를 메타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자신의 취향과 유사한 콘텐츠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은 주식시장에서 독이기도 하다.
결국 주식은 단순한 투자 도구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각자의 믿음과 가치관이 투영된 거울이며, 자기 확신과 자기 의심 사이를 오가는 지난한 자기 성찰의 과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