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사이비다

by Anfang

한국 사회에 사이비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정치권은 특정 종교 단체와의 연관설에 흔들리고, 길거리에서는 말을 걸어오는 사이비 신도들을 쉽게 마주친다. 과거의 사이비가 음지에서 소수 단체를 중심으로 은밀히 활동했다면, 오늘날 사이비는 양지에서 법적 테두리를 교묘히 이용하며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그 결과 사이비는 더 쉽고 강력하게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하고 있다.


사이비의 특징 중 하나는, 믿음의 근거를 명석 판명하게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은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현장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주관적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 같은 비과학적 믿음은 종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빨간 펜으로 이름을 쓰면 괜스레 불길하고,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날 것만 같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운세나 무속신앙, 가짜뉴스나 음모론에 쉽게 흔들린다. 투자를 할 때도 섬세한 분석보다 믿음과 희망으로 ‘김치 프리미엄’을 만들곤 한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는 언제나 사이비에 빠질 위험이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비과학적 믿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유발 하라리는 “허구를 믿는 능력이 인간 문명의 원동력”이라고까지 말한다. 종교는 연대의 근거가 되며, 인격 수양과 봉사 정신을 통해 사회적 효용을 낳기도 한다. 심지어 믿음에 근거한 투자가 행운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믿음이 반증을 철저히 배제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성공적인 사이비 중 하나는 바로 ‘무의식’으로 유명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당신이 직장 상사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심장이 뛰고 불안해지는 이유는,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 때문일 수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이론은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과거의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무의식적 억압’에 빠진 것으로 호도된다. 이 경우, 스트레스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에도 자신의 과거를 폄하하도록 만든다. 다소 투박한 예시를 들었지만,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프로이트의 이론을 ‘사이비 과학’(pseudoscience)으로 규정한 이유다.


한국 사회가 진정 목도하고 있는 것은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다. 이념 갈등은 심화되고, 정보는 에코쳄버와 필터버블 속에서 편향을 재생산한다. 사실 그마저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굳이 교류하지 않아도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피로감만 유발한다. 합리적 분석과 탐구는 ‘썰’에 불과하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보고 들은 것만을 믿으며, 자신이라는 신에 심취한 사이비 교도들이 돼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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