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등대가 필요하다

갈등 사회를 넘어서

by Anfang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사공이 많아도 배는 똑바로 나아갈 수 있다. 바로 사공들이 분명한 목표를 공유할 때다. 우리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과 함께할 때, 그리고 목표하는 바가 동일할 때 화합과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


지난 반 세기 동안에는 '자유', '민주화', '경제 성장'과 같은 뚜렷한 목표들이 공유됐다.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 단결하고 때로는 희생했다. 이 목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개인들과 관련되고 사회적으로 추구되는 보편적 가치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갈등에 비한다면 일률적이었고, 표면적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 담론들은 달성되거나 혹은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은 경제 대국 반열에 올랐지만, 동시에 경제 위기와 양극화에 직면했다. 민주화 또한 6월 항쟁이나 촛불 혁명 등의 과정을 거쳐 성취됐지만, 여전히 기득권의 독단과 비리는 만연하다. 결국 우리를 묶어주었던 거대 담론은 완성됐다거나, 더 이상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에 직면했다.


등대를 잃은 사공들은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됐다. 배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 '민주화', '자유', '경제 성장'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여성' 인권, '남성' 인권, 혹은 특정 세대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요구처럼 개인의 특수성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목표들을 추구하게 됐다. 물론 이러한 목표들 역시 가치 있고 때론 특수성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거대 담론에 비해 분절적이며, 한정된 사람들에게 더욱 밀접한 가치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파편화된 가치들은 우리 사회의 틈새에 더욱 쉽게 침투하기도 한다. 민주화만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이제, '남성', '여성' 혹은 '제3의 성'으로서, '청년', '기성 세대'로서, 그리고 이념이 아니라 특정 정당 혹은 인물의 지지자로서 싸우게 됐다.


이처럼 거대 담론의 상실로 갈등이 심화됐다면, 갈등을 해소하는 길 역시 새로운 보편 담론의 발견에 달려 있다. 물론 특수한 담론들도 지속돼야 하고, 미래에 어떤 보편적 가치가 우리 사회를 다시 묶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공통으로 지향할 목표를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통과 만남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배제와 무시는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배가 산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사공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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