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해답
학창 시절, 독거노인 돌봄 봉사를 갔다. 독거노인 봉사라고 하면, 집안일을 해드리거나 수발을 들어야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내가 한 일이라곤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노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부였다. 이야기는 나름 재밌었다. 자식들을 키워낸 사적인 이야기부터,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은 생생한 이야기, 그리고 한때 마늘 장사를 크게 하셨다던 이야기는 꽤 인상적이었다. 봉사를 마치며 나는 깨달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말동무'라는 사실을.
말동무를 갖는다는 것은 타인과 소통하며 유대감을 맺는 일이며, 나아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마을 회관이나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 모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건네는 노인들의 모습은 이 바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필요는 생계만이 아니라,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공동체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고령화를 경제적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지고 생산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만 앞선다. 그래서 정년 연장이나 노인 일자리와 같은 대책들이 거론된다. 물론 그 역시 필요한 제도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고령화 사회가 심화될수록 정년은 끝없이 연장돼야 할 것이고, 노인 일자리는 일시적이며 생산성이 낮다.
이와 같은 임시방편은 정작 경제라는 위장막에 감춰진 노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치솟는 노인 우울증, 고독함, 소외감을 단순히 빈곤의 문제로만 호도한다. 우리는 청년들의 자살률에 기겁하지만, 정작 청년 자살률을 웃도는 노인들의 자살률은 도외시한다. 노인들의 우울은 빈곤으로부터 나타난 것일 뿐이라 단정 지어졌기 때문이다.
노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공동체와 소통이다. 소외와 우울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경험과 고민, 가치관을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인만을 위한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공동체여야 한다. 우리 역시 그들의 삶 속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베재나 격리, 차별이 아닌 진정한 사회적 유대가 가능하다.
과거 서울시가 진행한 '노인 이야기 들어주는 청년예술가 프로젝트'나,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은 좋은 사례다. 이야기가 가득한 삶의 수레가 요란하게 굴러가도록,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