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아프게 , 때론 불꽃같이
하필이면 ..은 좋지 않을때 쓰는 말이지만 .. 반대로 좋은 상황에 갖자 붙이자.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 들과 인연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 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을거 입을 거 걱정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P14
억만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난 우리의 생명은 그러면 무엇을 약속함인가. 다른 생명과 달리 우리의 태어남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약속이다. 미움끝에 용서를 할 줄알고, 비판 끝에 이해할 줄 알며 . 질시끝에 사랑할 줄 아는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일은 이 약속을 지켜가는 일이다. P18 -
마지막으로 ,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다루는 프로에서 말기 암 환자인 한 젊은 엄마의 마지막 몇달을 취재했다. 죽음 을 맞이하는 젊은 엄마가 아홉 살과 일곱 살짜리 아들들 에게 남긴 유언 은. ‘ 언제나 씩씩하고, 아빠가 새엄마를 모시고 오면 새엄마게에 잘해드려라’라는 것이었다. 엄마를 묻고온 날밤. 두 어린 형제는 마주 앉아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 아빠 우리 항상 씩씩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 새엄마를 데리고 오지 마세요’. ..며칠후 기자가 다시 형제를 찾아 갔을 때 형제는 ‘안녕하세요’ 라고 먼저 인사를 했다. ‘ 엄마 보고 싶지 않니?’ 기자가 묻자 갑자기 아이는 군인처럼 손을 양옆에 붙이고 꼿꼿이 서더니 모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넷 보고 싶습 니다 .그렇지만 저 씩씩해요’ 순간 나는 분명히 카메라가 흔들 렸 다고 생각했다. ‘ 군인같은 자세로 고함 지르는 것이 아이가 생각하는 ‘씩씩함’이었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 는 것 이었 다. P27 - 아버지가 밑줄 치었던 내용
어느덧 불혹을 넘긴 나. 이제는 어느정도 여유롭게 삶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조금은 호기를 부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불혹 - 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 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이란 말은, 따지고 보면 슬픈 말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고, 슬픈 것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노하지 않으 며, 귀중한 것을 보고도 탐내지 않는 삶은 허망한 것이 리라. 그것은 이제 치열한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 그저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자리바꿈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쩌면 불혹은 일종의 두려움, 삶의 한가운 데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는 데에 대한 슬픈 자기 방어 를 말하는지 모른다. (중략) 그러나 창 밖의 젊은이를 보며 나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불혹의 편안함 보다는 여전히 짝사랑의 고뇌를 택하리라고. 내가 매일 대하는 저 아름다운 청춘들을 한껏 질투하며, 나의 학문을,나의 학생들을 더욱 더 열심히 혼신을 다해 짝사랑 하리라 p35
<미국인>이란 소설에서 헨리 제임스는 한 인물에 대해 ‘ 그는 불운을 깨을까 무서워 발끝으로 살짝 걸으며 살아 갔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 아버지가 밑줄 그은 문장
영겁의 사간속에 비하면, 우리는 한평생 칠,팔십도 눈 깜짝할 순간이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아까운 세월인데, 우리들은 타고난 재주로 이리저리 시간 을 쪼개어 미워할 시간, 시기할 시간, 불신할 시간, 아품을 줄 시간을 따로 마련하면서 산다. (중략) 내가 지금 존재 하는 이 짧은 시간, 이 하나의 점 같은 공간이 우주인줄 알고, 또대체 왜 날 건드리냐고, 왜 날 못 잡아 먹어 안달 이냐고 조목조목 따지고 침 뱉고 돌아서려던 나의 개미 마음이 부끄러웠다. P53
우리들의 슬픈 영혼은 이제 지치고 피곤합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시간이 우리를 잊기 전에
수그린 당신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고
이 시는 이번 학기에 내가 가르치는 시인 예이츠가 쓴 <낙엽>이란 시의 귀결부분이다.
(중략)
오늘은 바로 나의 마흔세번째 생일이기 때문이다. 힘겨 웠지만 내 삶이 봄과 여름을 보내고 , 이제는 사랑의 이후는 이별의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슬프 지만 편안한 이별을 준비하기 보다는 아프지만 화려한 만남이 그리운 철부지다. 의연 하게 큰 마음으로 이별을 이해하기 보다는 여전히 가슴 졸이는 기대와 실망에 하루에도 몇번씩 울고 웃고, 터미니 없는 미세한 자극에도 무섭고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타는 어리 석은 나다. P55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직은 이별의 계절 가을을 이해 못하고, 지금도 저 찬란하고 투명한 가을 햇빝속에 반짝이는 코스모스의 유혹을 못이겨 불현듯 책상에 쌓인 일거리를 뒤에 두고 답답한 연구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재미 있는 나다 -> 특히, 마지막 구절은 가을이 되면 지인들 에게 보내는 아침편지로 자주 인용하는 문장임.
지난번 회식자링에서 정년 퇴임을 앞둔 선생님이 재미 있는 말씀을 하셨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마치 기차 여행 같은데.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그 속도가 점점 빨라 진다 는 것이었다. 즉 10대 때는 기차가 시속 1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려 한가롭게 창 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때로는 간이 역 에서 내려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가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20대가 되면 기차는 두배로 빨라져, 시간당 20킬로로 달린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 을 보고 느끼고, 사람들을 사랑 하고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 며 탐구해볼 시간이 있다. 실수로 기차를 잘못 타더라도 내려서 행선지가 다른 기차로 갈아 탈 수 있는 그런 속도 다. 그러나 30대 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차 속도는 점점 빨라져 창 밖의 푸경은 휙휙 지나가고 괜스레 마음은 초조 해진다. 그리 고 40대 부터는 종착역을 향한 곤두박질하기 시작하는 그런 인생 기차. P85
이 책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노인이 죽은 물고기를 지키기위해 혼신을 다해 상어와 싸우며 하는 말 ‘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 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it’ is silly not to hope,it is a sin)’라는 말이다 p89 (중략) 나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어린 학생들에게 ‘ 어떻게 하면 상어떼처럼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써먹는 상어떼 같은 수법들, 즉 노력 하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남의 것을 덥석 새치기 하는 야비한 기회주의, 남이야 아파하든 목적 달성을 위해 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비열한 편의 주의, 그리고 어차피 세상은 혼자 싸우기에는 너무 무서운 곳이라 단정짓고 불의인줄 알면서도 군중과 야합하는 못난 패배주의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P90
신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서 또 다른 문을 열어 놓는 법 이라 고 말한들 . - 아버지가 밑줄 그은 문구 p94
여전히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시험’을 치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올바른 결정인지. 지금 하고 잇는 내 행동 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이 무엇인지 등 ‘어떻게 정답을 찾는가?’는 매일 매일 의 화두다. 그러나 국민학교때와 다른 것은 그때는 교과 서 나 참고서에서 정답을 찾거나 선생님 에게서 명확한 답을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내게 속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 어쩌면 우리는 삶 자체가 시험인지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것은 용기의 시험이고 안내와 사랑의 시험이다.
지금도 나는 가금 생각한다. 우리에게 인생의 시험을 주는 이가 그 누구든, 어떤 문제를 내더라도 절대로 이루기 살패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p136
‘이제 잘 살려고 해요. 다른 사람에게 해 안끼치고 말 이 예요. 저야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나요. 제가 할 수 잇는건 그냥 다른 사람에게 해 끼치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지요 ‘ - 아버지가 밑줄 치은 문장 p152
말하면서 (돈 없고 많이 배우지 못한 농부) 박씨는 수줍게 웃었다. 그에게 ‘잘산다’ 는 말의 ‘잘’은 돈을 풍족 하게 쓰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단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산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껏 생각했던 ‘잘산다’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40평생 험한 세상을 살다보니 전투 근성이 생겨서인지. 내게 있어 ‘잘산다’는 의미는 상대적 인 개념으로서, 남보다 돈 ‘더’ 많이 벌고 남보다 ‘더’높은 자리 차지하고, ‘더’대접받는 것이다. 따져보면 ‘잘’ 이란 말 자체는 추상적인 단어로 ‘능숙하게’,’제대로’,’올바르게’, ‘탁월하게’ 뜻인데. 이상하게도 그말이 ‘산다’와 합쳐 ‘잘산 다 ’가 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물질적인 것과 연결 시 킨다 . (중략) 이 세상에 태어나 남에게 큰 도움은 못되더 라도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 겠다는 마음 자체가 기본이 되는지도 모른다. 죽을때 ‘내가 정말 한평생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이 세상에 해피 엔딩이 별로 없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P153
보통이 최고다
시럼 때 밤늦게 공부할라치면 아버지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몸 상한다’,어머니도 그저 ‘ 무조건 아프지만 않으 면 된다. 고웁든 뭐든 그저 중간치기만 하면 된다. 보통이 최고다’라고 하시며 우리의 타고난 재능에는 전혀 무관심 하셨다. 우리집에는 딱히 가훈이라고 정해 놓은 것이 없었 지만.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 오라고 하면 그래도 항상 아버지 서재에 붙어 있는 ‘선내보(착한 것 속에 보물 이 있다)’라는 말을 적어가곤 했다. 부모님의 교육관은 우리를 ‘착하고 건강하고 , 보통인 사람들로’ 키우는 것 이었 고. 그에 따라 우리 모두 착하고 건강하고 보통으로 잘 자랐다 p160
내게는 보석과 같은 책이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이 세상에 대해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 불과 몇십년동안 우리의 말들은 매우 날카로워졌다.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무슨 전쟁에 나가는 군인처럼 쓰는 단어들이 당장이라도 누군가와 싸울 것처럼 살아가는거 같다. 특히나. 이젠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당장이라도 돈을 안벌면 어떻게 되버리는 세상이다. 겸손, 근검, 검소의 가치는 딸에 떨어지고, 일확천금만을 가르치는 세상에서 무엇을 우리가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