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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ocean Aug 19. 2024

Ep.1 나에 대한 이야기 (2)

저번 이야기에 이어 마저 이야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어린이집을 무사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옷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도 자르고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죠. 졸업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참고로 저는 유치원을 나오지 않고 어린이집을 7살까지 다녔습니다. 그렇게 졸업사진을 찍고 소방 훈련도 하고, 체육대회도 하고 어느새 어린이집 졸업 날이 다가왔습니다. 사실 어린이집 졸업 날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린이집 때 기억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운동에는 소질이 너무 없었다는 것, 매일 어린이집이 끝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차를 타고 데리러 오시면 그대로 다이소에 가서 할아버지가 목마를 태워 주시면 1000원짜리 장난감을 사고 같이 저녁을 먹고 엄마가 데리러 오셨다는 것, 실은 어린이집 원장님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사하신 새로운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는 것 등 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저는 어땠는지 모를 졸업식을 잘 마치고 8살이 되었습니다.


8살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이죠? 맞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입학식 날에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하는데요,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입학식을 지하에서 했습니다. 들어가니 저와 같은 아이들이 어머니, 아빠 또는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더군요. 그리고 앞에 있는 무대에는 교장 선생님께서 연설을 하셨습니다. 연설을 하시고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교장 선생님께 입학증(?)을 받고 악수를 한 뒤에 교장 선생님께서 "절!"이라고 외치면 고개를 90도 정도로 숙여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은 뒤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랐죠. 교장 선생님께 악수를 하는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절!"이라고 외치시는 순간 저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닌 그대로 엎드려서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상대로 절을 해버렸습니다. 저에게는 당연했죠. 제가 아는 '절'은 새해에 하는 '절'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왜 그랬을까요? 그 자리에서 울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 본 적도 없고 그만한 관심을 받아본 적도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니 저희 어머니도 웃으시면서 저를 달래주시더라고요. 하하하. 그렇게 저는 입학식 날부터 학부모님들께 눈도장을 찍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저는 첫 등교를 하게 됩니다. 어린이집을 다니며 사회에 조금 적응한 덕일까요. 이제는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아침을 야무지게 먹고 학교에 갔죠. 그때 당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는 밥, 김치, 계란 프라이와 김이었습니다. 때로는 아침부터 두 그릇을 먹고 학교를 갔죠. 여전히 포동포동했습니다. 아직도 첫날이 기억나는데요, 첫날이라고 바짝 긴장한 상태로 색연필, 사인펜, 리코더, 실내화 등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1학년 1반이었습니다. 가서 아무 데나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다행이었습니다. 친구는 쉽게 사귈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조금 엄해 보이시는 분이셨는데요. 초등학교 6년 동안 선생님들 중에 유일하게 성함이 기억에 남는 분이셨습니다. '고윤자'선생님이셨습니다. 물론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은퇴를 하셔서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뵙고 싶네요.


초등학교5학년까지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피아노, 미술, 수영, 복싱, 수학등의학원들을 다니기도 하고, 닌텐도를 크리스마스선물로 받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6학년에 올라가기 전코로나가 터지 고맙니다. 어릴 때의 저에게는 걱정반, 기쁨반이었습니다. 심각한 전염병이 돈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학교를 가지 않아서 좋았기 때문이죠.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저는 위두랑을 통해 과제를 제출하고 영상을 보는 등의 방식으로 학교수업을 대체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뒤에는 줌수업을 하더라고 요. 그래서 그런지 6학년 때저의기억에 남는 것은 아주 가끔 홀수짝수번호를 나눠 등교를 했다는 것과, 줌수업화면만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심지어 선배들은 6학년 때에버랜드를 보내주었는데 저희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서야생각이 조금 바뀌었죠.'집에서 쉰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이렇게 코로나가 내발목을 잡는구나'. 그렇게 추억의 거의 없는 6학년을 보내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해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중1 때는 6학년 때와 다르게 학년별로 등교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은 등교를 하고 나머지 2주는 중2, 중3 선배님들이 각각 등교를 하셨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죠. 친구들과 얼굴을 보고 대화도 하고인 스타아이디, 전화번호 등을 공유하여 집에서 연락하기도 하고 6학년때와는 다르게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분의 2가 온라인수업으로 채워 진중학교1학년도 지나가고 중학교2학년이 되었습니다. 중학교2학년 때는 정말 다행히도 전면등교를 하였지만 마스크를 쓰는 것은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했습니다.'등교하는 게 어디냐.'라는 생각으로 요. 그리고 마침내 중학교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체육대회를 하게 됩니다. 너무 좋았죠. 줄넘기도 하고 줄다리기도 물론 판 뒤집기를 하다가 다치는 애들도 생겼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중3이 되었습니다. 중3에는 드디어 수련회를 갔습니다. 1박 2일이라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장기자랑을 나가 춤도 추고, 같이 오션월드에서 수영도 하고 워터슬라이드도 탔습니다. 그렇게 수련회를 마치고 학교 축제 시즌이 다가왔는데요, 이번에도 또 친구들과 장기자랑을 나가 춤을 추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험기간과 겹쳐서 아침 일찍 등교해 만나서 연습도 하고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남아서 연습을 하는 등 조금 빡셌습니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시험도 나쁘지 않게 보고 그렇게 축제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무래도 공연에서 저를 포함한 남자애들 3명에서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추고 그 뒤에 다른 애들과 워너원의 에너제틱, 마지막으로 기술가정쌤과 함께 전소미의 Fast Forward를 추었는데요. 학교 쌤들과 후배들의 반응이 제 기대보다 정말 커서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고생들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저의 마지막 중학교 축제였습니다. 그 후 기말고사를 보고 어느덧 졸업식이 다가왔습니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졸업이라니 중학교 시절의 절반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죠. 애들이 정말 많이 울더라고요. 그래서 우는 상태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정말 슬프고 웃기는 졸업식이었습니다. 친구들과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죠. 


그 후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남고였죠. 중학교와는 다르게 전교생이 941명이더라고요. 중학교와 다르게 전교생 수가 거의 2배였습니다. 남고여서 그런지 분위기가 좀 군대 같더라고요. 선배님들과 같이 체육관에서 입학식을 하는데 대답을 할 때 소리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진짜로 군대에 온 느낌이랄까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입학식을 마치고 얼마 뒤 첫 등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일어나는 일은 차차 이야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여기까지가 저의 이야기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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