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강남개발 프로젝트의 끝판왕, 잠실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22

by 김지웅

1970년대 서울의 도시개발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여의도에서 시작해 이촌동, 반포, 강남으로 확장된 ‘영동지구 개발 계획'이 일단락된 곳이 바로 잠실이다.


잠실은 단순한 아파트 주거단지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이 실험할 수 있는 도시계획 개념들이 한꺼번에 투입된, 말 그대로 ‘종합판’이었다.


국제경기장을 품은 도시

1960년대 말, 이미 잠실에는 종합 스포츠 타운 지구가 계획되어 있었다.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대규모 경기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구성한다는 발상이었다.


이 계획은 훗날 예측하지 못한 88 서울올림픽으로 이어지며 현실이 된다.

지금의 잠실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서울 스포츠 인프라의 중심이 된 이유다.


걸어서 사는 동네, 근린주구의 도입

잠실 주거단지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적인

생활 편의 개념이 적용됐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장, 학교, 주민 센터 등 공공시설을 배치해

일상생활을 걸어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른바 ‘근린주구’ 개념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 서울에서는 새로운 도시 실험이었다.


방사형 도시 구조의 실험

강남 지역이 격자형 도시구조를 가진데 비해 잠실은 잠실대교 남단, 잠실역을 중심으로

도로를 방사형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구조도 시도됐다.


하지만 이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이 일대는 대형 타워와 백화점이 밀집하며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교통 정체 지역이 되었다.


결국 이 방식은 이후 서울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성공보다는 한계를 보여준 사례에 가깝다.


섬을 육지로 만든 도시

지금의 잠실은 원래 섬이었다.

행정구역도 과거에는 성동구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지역에는 지금의 서울동부구치소(옛 성동구치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행정구역의 흔적이 공간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이 섬을 육지와 연결하기 위해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 지류로 바뀐 송파강을 매립해 현재의 지형이 만들어졌다.


도시가 쏟아낸 연탄재와 흙으로 만든 땅

현재의 석촌호수 너비의 강을 메워 잠실을 육지로 만드는 데는 막대한 양의 흙이 필요했다.

주요 재료 중 하나가 바로

당시 서울 전역에서 쏟아져 나오던 연탄재였다.


지금의 석촌호수 일대,

과거에는 강이 흐르던 이 넓은 공간이

도시의 폐기물과 흙으로 채워져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스스로를 확장하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낸 부산물을 다시 사용한 셈이다.

잠실은 ‘완성된 도시’가 아니라 ‘실험의 결과’다.


잠실은 단순한 신도시가 아니었다.

국제경기장, 근린주구, 방사형 도로, 인공 매립지까지.

1970년대 서울이 시도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도시계획 실험이

이곳에 집약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편리함과 동시에, 교통 혼잡과 같은 문제까지 포함해서.

잠실은 ‘잘 만들어진 도시’라기보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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