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 유허비, 올림픽의 그림자에 묻힌 기억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23

by 김지웅


송파구 잠실에는 올림픽공원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조성된 이곳은,

오늘날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 되었다.


경기장이 밀집한 공간과 몽촌토성,

그리고 '세계평화의 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원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런데 이 활기찬 공간에서 조금 벗어나 호젓한 산책길로 접어들면,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몽촌 유허비.

‘유허비’란 과거 이 자리에 존재했던 무언가의

흔적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잠실, 실험적 도시계획의 무대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는

여의도와 강남 개발에 이어

잠실을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설정했다.

이곳은 단순한 주거지 조성이 아니었다.


서울 역사상 처음으로

‘입체적 도시계획’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실험장이었다.

방사형 도시 구조 위에

10만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그리고 서쪽 매립지 ‘부리도’를 중심으로 한

국립경기장 단지.

잠실은

하나의 ‘완성된 도시’를 처음부터 설계하려 했던

거대한 계획의 현장이었다.


몽촌토성과 국립경기장 계획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968년 정부는 몽촌토성 일대를

국립경기장 부지로 지정해 두고 있었다.


1974년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에는

종합경기장 조성이 포함된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국제대회를 전제로 한 계획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성공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그런 국제규모 대회를 개최할 것이고,

그에 걸맞는 국제 경기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장기 마스터플랜의 일환이었다.


올림픽, 그리고 공간의 재편

1977년, 서울시는

잠실 육속화 공사와 함께

부리도 매립지에 '남서울대운동장' 건설을 시작했다.

그런데 1981년 9월,

19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다.


이 순간,

잠실 개발은 단순한 도시계획을 넘어

국가적 프로젝트로 확장된다.

주경기장은 현재의 잠실종합운동장에,

실내경기장은 주변 부지배치되었다.


몽촌토성 일대는

체조, 테니스, 수영장 등 일부 경기시설과

‘올림픽 기념공원’이 조성된다.

이 과정에서

한성백제 유적으로 추정되던 몽촌토성은

발굴과 보존의 대상이 된다.


사라진 마을, 남겨진 비석

하지만 그 이전,

이곳 몽촌에는 조상대대로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1970년대,

몽촌토성 일대의 이리마을과 몽촌마을에는

약 1,600여 동의 건축물과

수백 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


국립경기장 부지로 지정되면서

신규 건축허가는 중단되었고,

무허가 건물과 비닐 주택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원주민 상당수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인근 방이동 지역이나 하남, 성남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남아 있던 사람들 역시

시세보다 훨씬 낮은 보상금이나

시영아파트 입주권을 받고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몽촌 유허비는 이 이별의 기억을 남긴,

거의 유일한 흔적이다.


풍납토성과의 대비

같은 한성백제 유적으로 여겨지는

풍납토성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이미 대규모 주거지가 형성된 상태였기에

강제 수용이 불가능했다.

그 결과, 유적 보존은 어려워졌지만

주민들은 남았다.


반대로 몽촌토성은

마을이 사라지고 비석만 남았다.

오늘날 풍납토성 주민들은

개발 제한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를 호소하고 있고,

몽촌토성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유적을 지킨 대가와,

유적을 비운 대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은 질문

몇 년 전,

올림픽공원 인근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대규모 백제 유물이 발굴되며

공사가 중단된 일이 있었다.


왕성이 있었다면

그 주변에는 분명 민가가 있었을 텐데,

우리는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몽촌마을 사람들은 흩어졌고,

토성과 공원, 그리고 유허비만 남았다.

올림픽의 영광 뒤편에는

이처럼 조용히 지워진 공간과 삶이 존재한다.


올림픽공원은 기억을 기념하는 공간이지만,

몽촌 유허비는 지워진 기억을 증언하는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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