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은 어느새 고요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수렴첨정을 통해 정희왕후가 직접 국정을 돌본 지 수년, 나라의 기틀은 안정되었고 자을산군이 왕으로써 자리는 굳건히 지켜졌다. 한때 권세를 휘두르던 공신들은 하나 둘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반정의 칼끝을 쥐었던 자들은 늙어갔고,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정전의 기둥을 울리지 못했다. 대신들의 자리는 점차 주상을 중심으로 채워졌다. 정희는 그 모든 과정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분했고, 마음은 고요했다.
왕후의 침전에는 늘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창가에 앉아 달빛을 바라보며 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제는 물러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권력을 움켜쥐었던 손은 이제 조금씩 힘을 풀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고독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함이 찾아왔다. 나라가 안정되었고, 주상이 자리를 지켰으며, 왕실은 다시 중심을 되찾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공신들의 퇴장은 자연스러웠다. 한명회를 비롯한 이들은 여전히 궁궐에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권세는 예전 같지 않았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했고, 권력의 무게는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정희는 그들을 적으로 두지 않았다. 오히려 동지로 삼아 함께 걸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주상이 직접 그 자리를 이어받아야 했다. 그녀는 마지막 작업을 준비했다. 내명부의 질서를 세우고, 세자의 곁을 지킬 인물을 세우는 일이었다.
정희는 인수대비, 곧 의경세자의 세자빈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내명부는 이제 당신이 주관하십시오. 나는 하나 둘 뒤로 물러나겠습니다.” 인수대비의 눈빛은 놀람과 결의가 교차했다. 정희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왕실을 지키기 위해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세자를 위해 당신이 그 길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 순간, 내명부의 권위는 인수대비에게로 옮겨졌다. 정희는 더 이상 앞에 서지 않았다. 그녀는 뒤에서 지켜보았다.
궁궐의 회랑을 걸을 때, 예전처럼 긴장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들의 발걸음은 차분했고, 왕의 자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정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 권력을 움켜쥐던 손은 이제 세자를 향해 내어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다. 어머니로서의 마음이었다. 그녀도 한 명의 어머니였다. 세자를 지키고, 왕실을 지키며, 나라를 지켜온 어머니였다.
밤이 깊어지면 정희는 홀로 창가에 앉아 달빛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은은하게 궁궐의 지붕을 물들이고, 바람은 부드럽게 회랑을 스쳤다. 그녀는 고독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주상이 자리를 지켰고, 왕실은 안정되었다. 공신들은 하나 둘 퇴장했고, 그 자리는 주상의 사람으로 채워나갔다. 그녀는 이제 물러날 수 있었다. 마음은 고요했고, 눈빛은 따뜻했다.
정희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이제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지킨다. 권력은 주상에게, 내명부는 인수대비에게. 나는 뒤에서 지켜보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평온이 담겨 있었다. 궁궐의 공기는 달라졌다. 긴장은 사라지고, 안정이 자리했다. 정희는 더 이상 앞에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궁궐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존재이자 훗날 정희대왕대비라고 불리는 정희왕후의 여정의 끝이 다가옴을 알리는 신호였다.
조선의 정국은 서서히 변해갔다. 공신이 주도하던 권력은 왕실로 이양되었고, 주상은 중심에 섰다. 인수대비는 내명부를 주관하며 왕실의 질서를 이어갔다. 정희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고독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그녀도 한 명의 어머니였다.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며, 주상을 지키고, 왕실을 지키며, 나라를 지켜온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