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잡념일 뿐인데도, 그 작은 편린조차 수단화되고 상업화되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창작의 원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보다는 사생활이 '상품이 될수록 가치 없는 곳'의 재료로 쓰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 생각이라면, 보통은 일기장에 써야 마땅하겠지만… 비밀이 많은 사람의 일기장은, 종종 현실에서도 할 수 있었던 말들로 채워집니다. 혼잣말이 혼잣말로 그쳐서는 안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의 일과와 그 생각들을 공중에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기록은 회고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제가 서 있는 현장, 파리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생각과 감정의 생중계가 될 거예요. 그동안은 그런 찰나들을 숨기고 감춰왔지만, 이제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번뜩임까지도 제대로 기록합니다. 단점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장점은 스스로에 대해 가능한 한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장점이 더 크네요.
이 매거진은, 이미 북으로 엮은 <미스 플레이옐 다이어리>와 달리, "진짜 다이어리"로 연재될 것입니다. 미스 플레이옐 다이어리는 지난 10년간의 시간을 한 권의 책처럼 압축해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제 20대를 그려본 것이었죠. 그리고 이제부터 이 다이어리는, 저 30대를 써 내려갈 것입니다.
누군가는 유입을 늘리려면 다양한 글을 많이 쓰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사진을 올리라고 했어요. 완결된 글을 모아 북으로 묶으라는 전략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대로 글을 쓰면 퇴고를 무한정으로 하는 성격에다가 "완벽한 글"이란 것은 없다고 보는 쪽에 가까우며, 명예나 출판, 등단 같은 전통적인 목표보다는 글을 쓰는 순간의 진정성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이,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글과 그림은 전문성이 없다"
라고 떳떳하게 말하면, 누군가는
"제대로 할 마음도 없으면서, 간절함 없이 대충한다"
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반면에, 또 누군가 보기에는
"제대로 뭔갈 한 적도 없으면서 작가행세를 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와중에 저작권은 제대로 챙기려 하는 모습을 보고는 또 누군가는
"어딘가 쓰여질 일도 없을 작업물을 누군가 이용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마치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개인의 일부만 권리가 생기는 것과 같은 주장도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아주 많이 달라요.
자, 예를 들어볼까요.
암 투병 중인 부모를 통해 얻은 진심 어린 기록을 썼다면, 그것이 무명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대신 유명하게 해줄게, 대신 네 경험은 아니었단 걸로 치자"라는 식으로 빼앗긴다면—그것이 정말 예술입니까? 창작입니까? 소통입니까?
저는 삶의 무게를 담은 이야기에는 반드시 권리가 따른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설령 몇 천 원, 몇 만 원의 경제적 가치밖에 못 되더라도 말이죠. 10원이 아쉬운 사람이라 해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는 감히 팔 수 없는 이야기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정도의 돈은 다른 일로도 벌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액수가 수천 단위가 된다면, 고민이 깊어지겠죠. 그 제안이 솔깃하다는 건 결국 당사자의 선택 문제일 테지만, 사실 이 예는 아주 일차원적인 조건 비교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액수로 누군가가 당신의 이야기를 사고 싶어 한다면, 그건 이미 당신의 이야기에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당신은 작가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굳이 저작권이 부여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할 이유도 없는 셈입니다. 이미 그 작품은 권리를 가질 만큼의 고유한 무게를 지닌 것이니까요.
따라서, "남의 것에는 손을 대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게 맞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말이 다르죠. 좋은 귀감이 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존경하거나 동경하는 만큼 "닮아가는 것"은 곧, 사랑이에요.
그렇기에 저는, 제가 떠올린 생각과 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쓰이게 될 바에야, 적어도 스스로 정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지점부터 명예가 중요하지 않던 사람에게 명예는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되어버려요. 인지도가 없으면, 그러니까 유통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 차용하는 것에 속수무책이거든요.
제게 있어서 권리를 지킨다는 것은,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된 삶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외침일 뿐입니다. 누군가 내가 한 말 앵무새처럼 동일한 문장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그 말의 배경과 맥락, 그리고 사람이 다르면 그 문장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말 뿐인 것에 불과한 껍데기"의 언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의" 뒤에 숨은 전략가로 나도 모르게 변질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발전하는 제 세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 것이 내 것이고 저 것이 네 것이다"
누구의 것인지 옥신각신 따지고,
"이런 절차는 부당하하다", "그 방식은 예의가 아니다"라 등의 끝없는 매뉴얼과 규칙 속을 맴도는, 그런 수단적이고 표면적인 곳에서 이제 벗어나고자 합니다.
또한, 공감이 간다면 훔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공감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요즘 평균 독서량은 낮아졌는데,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하죠. "라이팅힙"이 대세라는보도를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만 말하고 싶어 하는지, 씁쓸합니다.
정말 공감이 된다면,
그 생각을 다른 곳에 끌어가 다른 목적에 사용하는 것보다
그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이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고, 소외되지 않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공감은 도용이 아니라 응답이어야 합니다.
"그 생각, 뻔하잖아."
"누구나 다 느끼는 거야."
"그냥 표현력이 부족해서 말이나 그림으로 못 옮긴 것뿐이지."
이런 말들은, 경청의 자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조차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민 끝에 세상과 마주한 방식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