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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위의 검객들

온라인에서 고수는 어떻게 고수를 알아보는가

by 사온
21:00
2025년 6월 27일, 금요일 (GMT+2)파리 시간


참 신기한 일이다. 팔로워도 아닌 이들이 검색을 통해 내 계정에 들어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도 내 문장을 차용하는 걸 종종 본다. 자신을 방어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말들을 빌려 쓰는 경우다.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주어 없이 비틀린 말로 은근한 저격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온라인이라지만 그냥 잠자코 있는 것도 나태하고 안일한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 만만한 줄 알았는데 반응하네?” 하는 식의 반응이 뒤따른다.


그 분노는 다른 대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직접 겨누기엔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사연이나 사회적 이슈를 끌어와, 자신이 비난하고 싶은 대상을 그 속에 빗대어 공격한다. 특정한 이름도 상황도 명시하지 않지만, 의도는 뚜렷하다.


문제는 그 논리가 언제나 타당한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설득력 없이 확장된 논지는 결국 본래의 타깃을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때로는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나 상황을 맥락 없이 휘감기도 한다. 그렇게 분노는 방향을 잃고 흩어진다.


선 넘는 발언이 이어지고, 상황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본래의 갈등 구조가 흐려지고, 비판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퍼지며, 심한 경우엔 스레드 밖의 SNS나 공간들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 의도했던 상대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새로운 타깃이 되거나 내부적으로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든 타인을 헐뜯고자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스파크가 튀는 것을 보면, 분명 저들은 조금 다르거나 튀는 누군가를 향해 알 수 없는 분노감을 갖고 있다. 결국 그들끼리 싸우는 상황이 된다. 이 것을 두고 토사구팽 이라고 하는 것인가...?


토사구팽(兎死狗烹)
: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뜻.
→ 목표물이 사라진 뒤, 도구로 쓰던 이들끼리 갈등하거나 소외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음.


더 흥미로운 건, ‘잃을 것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불편한 상황이 오더라도, 의외로 꽤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각자 손해 보지 않으려 눈치를 보고, 때로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른 척하며 조용히 물러선다. 마치 고양이들이 서로 "미야오오옹"만 하며 경계하지만 절대 싸우지 않는 느낌이랄까.


무관심한 척 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 작은 헛점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비틀고 쥐어짜내려는 시선들. 그 시선은 마치 무협 영화 속 고수들의 ‘각 재기’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예컨대,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음 모피어스와 훈련 격투를 벌이는 장면.

모피어스가 말한다.
“Show me.”
그리고 단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 서로는 상대의 수준을 직감한다.


익명성과 거리감 속에 감춰진 온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출된 말투, 계산된 침묵, 누가 먼저 선을 넘는지를 기다리는 공기. 어쩌면 이곳은 현실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사회생활’이 펼쳐지는 무대인지도 모른다. 서로 잘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면서도, 끝내 서로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일들이
단지 스레드나 SNS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꽤 자주 반복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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