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여행

꼭 멀리가야만 여행은 아니야.

by 불친절한 은자씨

이탈리아 혹은 밀라노에서 살고 있어요.

라는 말을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어머, 좋은 데 사시네요. 얼마나 좋아요. 유명한 곳 많은 나라에서 여행다니면서 살 수 있으니 참 좋으시겠어요."

이러하다.


어느 정도는 맞다.

아니, 맞았다. 좋았다.

어찌하다보니 의도하지 않았는데 십여 년 넘게 해외살이를 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가 중요한데, 이곳에 살게 된 계기가 내 의지가 전혀 없다보니

이렇게 오래 살게 된 어느순간 부터는 여행하기 참 좋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떠나고 싶은 이탈리아가 되었다.

언제까지 여기에서 이방인으로 지내야하지?

아이들 키우는 주부의 삶에 만족해야 하나?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을 때에는 이곳에서의 삶이 여행자의 삶이라 여겼는데, 날짜가 지워지고 나니 여행자의 기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행자가 아닌 해외살이는 현실이다.

이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오겠냐는 핑계로 매 주말과 연휴마다 유럽의 유명한 곳을 도장깨기 하듯 다녔다. 다섯 식구가 다니는 장거리 여행은 당연히 지출도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여길 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들테니 이 정도는 쓰는게 아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눌러 살기로 한 이후로 모든 것은 즉각적으로 돈으로 환산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언감생심, 자연스레 저절로 포기가 되었다.

남들이 의례 떠나는 긴 휴가기간인 부활절이나 아이들 방학기간에도 집에만 머무르는게 일상이 되버렸다. 여행이 고팠다. 여행자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다시 어디론가 -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은 아니지.

이런 생각이 스쳤다.

떠나고 싶은 욕구도 채우고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해 보기로 했다.

소풍처럼, 산책처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채울 필요없고, 어디서 자야하나 뭘 먹어야 하나 스케쥴을 짤 필요도 없어졌다.

그렇게 가볍게 다닌 곳을 끄적거려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