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울산, 토리노

한국차도 진열되는 날이 오겠지?

by 불친절한 은자씨

며칠 전 쏟아져 내린 우박과 폭우 덕분에 8월 목전이지만 선선한 여름이다. 방학은 또 방학대로 느리지만 삼시 세끼 차려내는 내 일상은 그대로이다.

놀러가고 싶다. 누구누구는 어디 어디 간대요..

이런 소리 없는 아이들이라 되려 내가 묻는다.


“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어디 산이나 갈까? 아니면 다른 동네 놀러가자”

각자 방에서 제 할 일들 하고 있는 세 녀석에게 일일이 의사를 묻는다.

요즘 한창 로블럭스와 마인크래프트에 빠진 막내는 금세 안색이 어두워진다. 이런 막내를 보니 오늘만은 꼭 게임을 멀리 하도록 나갔다오리라 결연한 마음이 생긴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 문득 몇 년 전 이집트 박물관이 있는 토리노에 유명한 자동차 박물관이 있었음이 생각났다.

“ 토리노에 자동차박물관 있으니까 거기 다녀오자. ”


토리노는 밀라노에서 서쪽방향으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이다. 엊그제 쏟아진 우박과 폭우 덕분에 창 밖 풍광이 깨끗하다. 모두 산과 바다로 떠난 시기라 텅 빈 A4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맛이 제법 괜찮다. 고개 돌려 보이는 창 밖 풍광이 녹색과 파란색이 겹쳐 지나치니 한 시간 반이 지루할 틈이 없다.

토리노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차 박믈관 위치를 확인하고 점심을 먼저 먹기로 한다. 배고프면 어디를 가도 짜증내느라 뒤끝이 안좋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내키는대로 출발한 터라 점심먹을 식당이나 유명 카페를 미리 알아봤을리 없다. 항상 그렇듯, 그냥 대충 구글 맵 지도에서 몇 군데만 추려낸다.

위치와 가격을 고려해서 로컬 식당을 정했다. 박물관 뒤편 10분 남짓 주택가에 위치했는데 휴양지가 아니라서 식당은 한가하다. 사람이 너무 없어 불안했지만, 왠걸 주문한 메뉴 모두 맛있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니 박물관 가는 길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아이들도 기분이 좋은가 셋이서 장난치며 잘 걷는다.


두꺼운 유리처럼 보이는 소재의 반원 형태의 현대적인 외관이 낯설다. 대리석 팔라쪼와 박물관이 당연한 이탈리아에서 이런 모던 건물은 참 안어울린다. 문을 열자 빨간색 빈티지 페라리가 반겨준다. 높은 천장고 덕에 채광이 밝아 시야가 탁 트여 빨간색이 더 극명하게 눈에 띈다. 전시장은 이층부터 볼 수 있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자동차와 관련있는 마차부터 시작하여 이탈리아를 비롯 유럽 각국, 미국 대표 자동차들이 시대별로 진열되어있다. 고전 영화 속 등장한 자동차나 유명인사가 탔던 자동차, 자동차 엔진 등도 전시되어 있다.

막내가 호기심이 동해서 신나하기를 기대했겄만, 아이들은 시큰둥하고 나와 남편만 신났다. 초창기 마차에서 넘어오던 시기의 자동차는 자동차라기 보다는 마차에 더 가깝다. 엔진이 개발되면서 현대 의미의 자동차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크기도 작아지고 디자인도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여러 나라의 자동차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토리노이다보니 이탈리아의 대표차인 피아트 FIAT 모델이 시대별로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Fabbrica Italia automobili Torino.

토리노의 이탈리아 자동차 공장

FIAT의 뜻이다.

이렇게나 직관적인 이름이었다니!


천천히 둘러보니 두어시간이 지나 박물관이 닫기 전에 나왔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긴 아쉬우니 첸뜨로로 향한다. 여느 이탈리아 도시와 마찬가지로 토리노 역시 piazza가 중심지이다. 하지만 Po 강이 흐르고 산이라기엔 낮은 오름만함 것이 뒤에 자리잡고 있어 도시가 운치있다. 강이 있는 도시는 역시 뭔가 특별한 무드가 있다. 널찍한 첸뜨로 광장을 슬렁슬렁 인파에 휩쓸려 걸어본다. 언뜻봐도 몇 백년은 족히 될 법한 가게들이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의 매력은 아무래도 오래됨인 듯하다. 아까 봤던 자동차 박물관 건물보다 이 골의 오래된 카페가 더 이탈리아스럽다.

입에서 단 것 좀 먹자고 아우성이라 카페를 지나치지 못하고 젤라또를 사 먹는다. 망고와 딸기 맛을 골라 먹는 우리 가족을 보고는 넉살 좋은 토리네제가 말을 걸었다.

“ 여기 카페는 저 크림 올라간 노란 디저트있지? 그게 유명해. 그거 먹어봐요.”

관광객으로 보이는 우리에게 영어로 친절하게 권유한다.

“니네 관광왔어? 어디서 살아? 밀라노? 오! 몇 년이나 산 거야? 한국사람이라고?

우와. 내 딸이 악기 배우는데 선생님이 한국사람이야.“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걸 알고서는 내적친밀감이 상승했는지 더 대화가 길어진다. 한국 위상이 얼마나 높아진건지 느껴진다. 한국이라하면 북한이냐고 묻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말이다.

오랜 해외살이에서 이런 날이 도래하다니,

어쩌면,

머지않아 오늘 방문했던 자동차 박물관에 2000년대 를 대표하는 자동차에 한국의 자동차가 진열될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보통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