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바다, 호수 어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Lago blu

by 불친절한 은자씨

집에서 한 시간만 가면, 다들 큰 맘먹고 오는 호수며 산이 있는데 왜 집에서만 뭉개고 있는지 원….

주말마다 내 원망섞인 투정을 듣던 남편이,

왠일로 이번 주말에는 어디 다녀오자고 그런다.

“으잉? 진짜? 애들이 안간다고 할 것 같은데…“

“아니야. 애들도 갈거야.”

알고보니, 어제가 내 생일이었는데 외식도 안하고 그냥 넘어간게 미안해서 애들에게 미리 공표를 해 두었더라.

아빠의 설득이 나름 타당했던건지 아이들도 군말없이 착착착 빠릿빠릿하게 준비를 한다.

그래도 이미 10시라 너무 멀리는 못 가겠다 싶어 가고싶은 목록으로 저장해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산과 호수를 훑어본다.

Lago Blu.

190km 두 시간거리이다. 꼬모나 레꼬 방향이 아니면 어디를 가도 최소 두 시간이 걸리니 그냥 aosta 위쪽의 lago blu로 가기로 한다.


사실 이탈리아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그래서 그것만 보려고 따로 일정을 잡는 산, 바다, 호수가 참 많다. 돌로미티 지역, 꼬모나 가르다, 브레이아스, 사르데냐, 풀리아, 포지타노 등등 이 지역 모두 각각 산, 호수, 바다에서 한 이름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가 축복받은 이유는,

이렇게 유명세 넘치는 곳이 이탈리아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구석구석, 아직도 덜 알려지고 그런데도 유명한 장소 못지않은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여전히 많다.

Lago Blu.

이름부터 청량하기 그지없다.

오랫만의 외출이라 설렘을 감출 수가 없다.


Lago blu로 가는 길은, 스키로 유명한 체르비니아를 거치는 동선과 겹친다. 이탈리아에서 스키는 돌로미티 쪽인 꼬르티나 담페죠 지역이 유명하지만 밀라노에서 서쪽 방향인 발레 다오스타 이 쪽도 못지않게 겨울철 스키지역이다. 여기 길로 쭉 북쪽으로 가면 마테호른산이 있는 체르마트 지역에 맞닿는다.

토리노에서 넘어가기 시작하지 멀리서 있던 산등성이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차 안이어도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의 온도가 조금씩 낮아짐이 느껴진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내린 뿌연 석회수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모습도 보인다. 어느새 도시의 모습은 지워지고 띄엄띄엄 만화 속에서 본 세모 형태의 지붕이나 각도가 기울어진 지붕의 집들이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이제 구불구불한 국도로 진입한다. 1시가 지났다. 아무래도 목적지까지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건 너무 늦을 것 같다. 이쯤해서 마을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길거리에 사람 한 명 보이지도 않고, 일요일이라 그런가 열린 가게 하나 없다. 두 어번을 빙빙 돌아봐도 레스토랑이 없다. 그 때 딱 눈에 띈 호텔.

“ 아마 호텔에는 호텔 식당이 있을거야. 가보자“

더 늦으면 그냥 옆 슈퍼에서 샌드위치를 사 와야 할 판이다.

“scusi, c’e il ristorante nel hotel?”

리셉션에 물었더니 호텔 레스토랑은 없단다. 에휴.

그냥 가려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근처에 문 연 식당이 있냐고.

다행히 친절한 직원이 이 동네에는 식당이 딱 하나 있다며 열었을 거라고 이름을 적어준다.

식당이 딱 하나. 그러니 못 찾았지.

다행히 호텔에서 멀지않았고, 식당안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안심했다.

우리는 주방 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 주문을 했고, 모두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배도 부르고 다시 차에 올라 삼십분이 채 안걸려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리니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으음”하고 심호흡을 뱉어낸다.

“이거지”

큰 애가 기지개를 펴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막상 집 밖을 나오면 이렇게 좋아하면서

늘 나오는게 망설여진다.

누군가가 버려진 나무 판에 휙 써 놓은 듯한 <Lago blu> 이정표가 바로 보인다. 그래도 입구라고 정돈해둔 돌계단이 있다. 엄청 많이 올라갈 준비를 했는데, 다짐이 무색하게도 몇 걸음 걸으니 바로 호수가 눈 앞이다.

설마 이게 다야?

사진에서 봤을 땐 엄청 큰 줄 알았는데,

carezza 호수 정도의 규모를 기대했는데 말이다.

실망감을 안은채 호숫가 둘레를 슬렁슬렁 걷는다. 다섯 명이 일렬로 걸으며 찬찬히 호숫 속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걷다보니 시원한 공기가 느껴져 또 기분은 좋아진다. 호수를 들여다보니 왜 이름이 블루인지 알 만하다.

호수는 이름처럼 푸른 색인데 다 같은 푸른 색이 아니었다. 어느 부분은 초록에 가까운 푸른색이고, 또 어느 부분은 차라리 하늘색이라고 해야 맞을 듯 싶다.

한참을 호수멍을 하고 이대로 집으로 가기는 아쉬우니 Breuil Cervinia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빼곡할테지만, 지금은 하이킹을 하러 온 사람들만 조금 있을 뿐이라 한적하다. 날씨기 더 맑으면 마테호른도 볼 수 있지만 오늘의 우리에겐 그 정도의 운까지는 따르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삼십분쯤 지났나? 마을을 다 둘러보았다. 더 할만한 것은 아무리 봐도 없지싶다. 겨울에 스키타러 오는게 아니면 딱히 할 만한 것은 없어보인다. 하늘도 어둑해지는게 아무래도 이쯤해서 집으로 가는게 낮지싶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가 다시 울룩불한 산이 옆으로 비켜가고 뾰족한 지붕의 집들이 지나가더니 이제는 도시의 풍광으로 바뀐다. 집에 도착하니 훅~도시의 냄새와 공기가 덮친다. 다녀온게 맞나싶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콧바람 쐬고 오니 다시 일주일 살림할 에너지가 충전된 기분이다. 잠시라도 익숙한 곳을 떠나야한다. 그래야 가라앉는 마음의 중력을 털어내고 둥둥 가벼워지지.

다음에는 애들에게 스키배워주러 이곳에 다시 와야지. 분명 겨울은 또 다른 모습일테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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