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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어느 날 내 아들이 총을 들었다

괴물이 된 아이, 양육에 실패한 엄마

by 박인정

내 아이가 연쇄 살인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건 두 아들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평범한 인생은 전화 한 통으로 영원히 막을 내렸다. 둘째 아들 딜런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총을 든 괴한을 피해 도망치며 공포에 떨고 있을 아들을 떠올리며 서둘러 직장을 박차고 집으로 향했다. 딜런이 바로 그 공포의 원천일 것이라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었다. 딜런과 그의 공범자 에릭은 일부러 점심시간에 터지도록 조작한 폭탄을 학교 식당에 설치했고, 폭탄이 불발되자 도망치는 학급 친구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날 사망한 사람은 총 13명이었다. 불구가 되거나 다친 학생과 교사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점점 좁혀오는 경찰의 포위 속에서 딜런은 도서관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에 발견된 비디오테이프 속, 참극을 준비하는 딜런은 울분과 증오로 가득 찬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죠?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어요?”


사람들은 딜런의 엄마인 수에게 따져 물었다. 딜런이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끔찍한 곳에서 자란 문제아였다고 단정 짓고, ‘사악함을 타고난 나쁜 씨앗’, ‘도덕적 지침 없이 자란 아이’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세간의 예상과 달리 딜런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사건 몇 주 전에는 자신이 진학하려던 애리조나 대학을 가족과 함께 견학했고, 사흘 전에는 턱시도를 차려입고 프롬 파트너와 커플 사진을 찍었다. 수 역시 비영리 단체에서 평생 장애인을 가르치고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옹호하며, 가족의 행복을 언제나 우선시하는 열정적이고 자상한 엄마였다.


그러니까 딜런이 타고난 기질이 나빴던 것도, 부모의 양육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수는 아동 발달과 아동심리를 전공한 교육학 석사였다.


사건 발생 2년 전부터 딜런이 내비친 우울과 불안감을 수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녀가 인지한 딜런의 변화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이라면 흔히 겪는 성장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부정적인 감정들이 딜런의 뇌를 잠식해 수많은 사람을 해치고 끝내 자신의 목숨까지 끊게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25년 9월 10일 미국 유타의 한 대학교에서 총격으로 피살된 정치운동가 찰리 커크를 애도하는 메모들과 꽃다발. (사진=박인정)


위 내용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일부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영원한 17살로, 잔혹한 살인자로 남은 아들 딜런의 흔적과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사건 발생 16년 뒤 4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녀의 책이 발간되자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부모가 쓴 책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아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를 덜어내는 면죄부로서 책을 낸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독자인 내가 주목한 건 살인자 딜런의 성장 스토리가 아니었다. 아들 딜런에 대한 어머니 수의,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전문가적 분석도 아니었다. ‘잔혹한 살인마를 낳고 방치한 엄마’라는 낙인과 비판을 감수하고도,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인 수의 결단과 용기였다.


믿어 의심치 않던 자신의 교육법이 얼마나 처절히 실패했는지를 고백하는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불편할 만큼 적나라하고 솔직한 고백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또 다른 참극을 막는 데 아주 가느다란 실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그 염원은 딜런이 무고한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하던 순간, 어서 그가 자살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던 엄마의 통렬한 심정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위로와 설득의 힘으로 작용한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내 아이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라며 막연히 믿고 내버려 두는 것은 시한폭탄을 방치하는 것만큼 위험할 수 있음을 되짚어준다.


뒤집기도 아직 못하는 내 딸은 세상 모든 것에서 아직 무구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작은 몸으로 버둥거리며 내 눈동자를 바라본다. 이 연약한 생명을 올바르게 키워 세상에 내놓을 생각을 하면 물가에 아이를 홀로 두는 것만큼이나 두렵다. 파도가 아이를 덮칠까 봐 무섭고, 아이 마음속에서 일어난 파도가 아이를 삼킬까 봐 두렵다.


그러나 아직 오지도 않은 파도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신 나는 설레기를 택한다. 아이와 함께 세상을 살아갈 행운을 먼저 기대한다.


나는 다짐한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아이에게 심어주자고. 아이의 비언어적 호소에 귀 기울이고, 육체적 건강만큼이나 정신적 건강을 챙길 줄 아는 엄마가 되겠다고.


사랑해. 넌 혼자가 아니야.


훌쩍 자란 배냇머리를 귓등에 걸어주며 나는 속삭인다. 나는 그렇게 첫 삽을 뜬다. 험준한 파도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파제를 쌓아나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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