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 문학나눔 2023)을 읽고
처음엔 불편했다. 시대분위기와 맞지 않는 듯했다. 이미 남성 중심적 사고에 깊이 세뇌되어 의식하지 못했던지. 그러나 읽을수록 공감이 되고 한번쯤은 숙고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글은 세대를 달리하여 살아 온 두 모녀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내용이다. 1983년생 딸과 1959년생 어머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중심 사회에서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전해야할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다’는 믿음을 품고 ‘오래 전부터 안에 고여 있었고, 자라면서 더욱 증폭된 이야기’에 대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첫 장을 펼치면 마치 작가의 실제 경험을 고백하듯이 술회한다. 이런 서술효과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가장 적절하다. ‘저의 몸과 저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러니 ‘가만히 들어 주세요’라고 독자들의 마음을 모으고 집중시킨다. 도입부의 이런 고백체 시발이 진지하게 와 닿았고 무엇보다 내용이 쉽게 다가왔다. 1부와 3부는 1983년생 딸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이고, 2부는 1959년생 어머니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역경’을 그렸다.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서 살아 온 모녀이지만 이 사회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냉혹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부조리한 ‘억압과 불평등’에 짓눌려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
“세상에. 얘는 왜 이렇게 말랐어? 뼈밖에 없네.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겠어.”
화자는 어렸을 적부터 마르고 왜소한 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엄마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비쩍 마른 것’에 대해 지적을 하고 어머니는 자주 ‘창피한 얼굴’이 된다. 학교에서는 ‘마르고 왜소한 체형’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
그로 인해 화자는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한다. 더구나 또래에 비해 2차 성징이 늦고 성에 대한 온전한 상식을 접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성에 대한 무지와 열등감 속에서 과도한 고민을 하며 소모적으로 성장기를 보낸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의 목숨이 위태롭듯이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따라서 성장기 청소년에게 시기적절한 성교육은 필수적이다. 평생 안고 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 무렵, 화자는 불쾌하고 쓰라린 첫 경험을 한다. 대학시절 사귀던 남자에게 ‘짐짝처럼’ 떠밀려 지리멸렬한 성경험을 한다. 일을 마친 남자는 말없이 모텔을 빠져 나가고 홀로 남겨진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녀는 그때를 회고하며 비록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일방적인 섹스는 강간이라고 말한다. 상당히 긴 지면을 할애하여 표현한 그녀의 첫 경험을 이해하면서 가슴이 아렸고 분노가 치밀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는 섹스는 폭력이며 범죄임을 재삼 방점을 찍어둔다.
결혼생활은 순탄한 듯했으나 남편과 시부모가 아기 낳기를 바라자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의무적인 성행위나 아기 낳는 일에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주체는 ‘자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홀로 사는 길을 택한다.
성생활을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여기고,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결혼은 왜 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부부간에 ‘성생활과 자녀’가 중요하긴 하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비혼주의와 딩크족의 비율이 왜 갈수록 높아지고 있겠는가.
주변의 편견이나 잘못된 간섭으로 위축당한 채 성장하면 평생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화자는 과감하게 자기를 옭아매는 굴레를 한 꺼풀씩 벗어내며 독립된 개체로 당당하게 홀로 선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가해 남성들의 성본능과 성욕으로 인해, 피해 여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가를 알린다.
2부는 1959년생 어머니 박미복의 성장기이다. 미복은 고향 마을, 한 남자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그는 마을의 폭군이자 인간 사냥꾼이었다. 법으로 통제 불능인 남자는 젊고 예쁜 처자를 겁탈하지 못해 안달한다. 1960년대 시골마을엔 파출소도 제대로 없었고 치안도 불안한 상태였다. 알게 모르게 이 남자에게 피해를 당한 여자들은 소리 없이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신고하지 못했다.
가해자가 아니라 왜 많은 피해자들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중 하나는 혼전 여성의 순결 문제라고 본다. 처녀의 혼전 순결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켜야하는 것으로 터부시해 왔다. 토마스 하디의 소설 「테스」에서도 남주와 여주의 혼전 섹스 문제가 뜨겁게 거론된다. 따라서 성폭행을 당한 후 가해 남성보다 오히려 피해 여성에게 따르는 부정적인 꼬리표와 후속 피해를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오랜 세월동안 성 범죄자들의 범법행위를 숨기거나 묵인해 온 결과 우리 사회가 더 많은 피해를 양산해 왔고 그들의 범죄행각을 방조했다.
또한 여자를 겁탈하는 것이 남자의 성적 본능이며 단순한 성충동이라고 치부해 버린 남성중심 사고의 악폐이다. 한때 전국을 강타했던 성교육 프로그램 ‘구성애의 아우성’이 있었다. 강사가 초등생(3학년) 시절, 친한 이웃집 오빠(고교생)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월경불순과 성병 감염으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구성애님은 자신의 고통스런 사례를 드러내며 성교육 강사로 나선다.
강사님은 성장기 청소년의 성교육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였다. 또한 남자와 여자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다른가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파했다. 이러한 분들의 노력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성적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이어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성교육에 관해 눈을 뜨게 되고, 결과적으로 청소년 성범죄 예방에 한 몫을 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때만 해도 성폭행 범죄와 관련해서 가․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왜곡돼 있었다. ‘여자가 어떻게 처신을 했기에’라거나 ‘원래 남성이란 존재는 다 그렇지’ 등의 편견으로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 여성들을 힐난하는 투의 왜곡된 인식이 견고했었다. 그런 시기에 자신의 쓰라린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성교육 강사로 나섰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멋진 일이다.
게다가 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분 어머니의 훈육과 후속 조치이다. 그분 어머니는 성폭행을 당한 어린 딸을 꼭 안아주면서 ‘괜찮다.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딸을 따뜻하게 다독였다. 그리고 가해자를 불러 피해자 앞에서 직접 ‘사과’를 하도록 했다. 그랬기 때문에 딸은 고통스런 후유증을 건강하게 이겨내고 훌륭한 강사가 될 수 있었다.
이 책의 메시지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개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바른 인식과 경각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 내지는 지배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있다. 미복의 아버지 역시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고를 가진 탓에 딸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집안에 갇힌 미복은 식음을 전폐하고 시위하다 의식을 잃는 원인모를 병을 앓게 된다. 굿을 하고 약을 복용한 후 증세가 호전되자 두렵고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도피성 가출을 한다.
처음 미복은 옷 공장 실밥 일부터 시작한다. 이곳에서 인간이하의 취급과 노동력 착취를 당한다. 다음엔 중개인에게 속아 술집으로 팔려간다. 술시중을 들면서 취중 남자들의 욕설과 폭행을 견뎌야했다. 그렇게 번 돈은 소개비와 의복비, 화장품 값으로 다 빼앗긴다. 만신창이 된 몸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 남자와 도피성 동거를 하지만 곧 버림받는다. 미복의 나이 23살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그러던 중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에게 구조되어 사별한 남자와 혼인을 하게 되고 두 딸을 낳게 된다. 이건 미복만이 아니라 당시 배움이 없고 가진 것이 없는 여자가 살아가야했던 삶의 한 방편이었다. 미복이 겪어 온 상처와 역경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딸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별반 놀랍지 않다. 그 당시 남성중심 사회에서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내몰린 딸들의 처지가 도긴 개긴 이었으며 비일비재했다. 사고무친 타지에서 기댈 데 없는 어린 딸들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 유린당한 채 피폐한 삶을 견뎌야 했다.
2017년 뉴욕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전 세계 여성의 성 피해 사건에 도화선이 된다. 우리나라도 ‘미투 운동’이 검찰 성추행 폭로에 이어 연예계, 정치, 교육계를 넘어 청소년들에게까지 번졌다. 그 여파로 성에 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동안에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부문에 놀라운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피해 사례는 갈수록 인면수심의 파렴치함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의부나 친부에게 상습적인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며, 교사, 목회자, 사회의 저명인사에 이르기까지 성폭행 사례는 성역이 따로 없다.
1인칭 시점으로 고백하는 두 모녀의 외롭고 어두운 사연들이 소수 개인의 특별한 체험이라기보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상처와 고통이라고 느껴진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가시화하고 공론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이 주는 시사점은 중차대하다.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인간은 누구라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개인적인 편견과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하고 재단해선 안 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분열되고 소통이 어려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대인에게 ‘몸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조용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