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시가 되지 않는 엿 같은 날

by 도도히

속이 꺼멓게 탄 누룽지를 죽이 되도록 끓입니다.

목구멍을 지나니 공갈빵처럼 부풀기도 합니다.

투가리에 담긴 알갱이들이 제각각 모반을 꾀합니다.

참기름을 치고 후라이를 넣어 달래봅니다.

속은 여전히 허하고 수선스럽습니다.

비 예보에 수상한 구름이 안을 기웃거립니다.

속 좋은 개 쑥떡 인절미로 기분을 달래보나

끝내 시가 되지 않는 허기를 어쩌랍니까.

활자는 자꾸 구멍 속으로 미끄러지며 달아나고

생각은 감자밭을 굴러 콩밭을 헤맵니다.

수만 개의 구멍을 뚫고

단절된 것들이 도리질을 하며 들이 닥칩니다.

베란다엔 고사리밥이며 아이비며 넝쿨손이

쑥쑥 뿔을 달고 부랑자처럼 휙휙 스쳐갑니다.

허공으로 팔을 뻗어 공중부양을 합니다.

꽃잎도 뿔도 줄기도 예외는 없지요.

객석에 불이 꺼지고 문 닫을 시간입니다.

들이치던 물방울이 빗질을 마치면

후미진 곰팡내 젖은 머리도 마를 것입니다.

도무지 시가 되지 않는 엿 같은 날

명사를 대신하는 대명사도 끝내 나타날 기미가 없고

수식을 좋아하는 관형사, 부사도 어디론가 숨었습니다.

밥도 죽도 되지 않는 날

뻥 뚫린 씽크 홀 공동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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