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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천사맘 Apr 17. 2023

오늘도 무사하길

시건 개방 구급 출동이었다. 시건 개방은 긴급 상황으로 사람이 방 안에 갇혀서 못 나올 때 구조대원이 강제로 문고리를 파괴하여 문 개방 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이나 구조 시 문을 강제로 개방하게 되면 손해 배상 책임을 묻지 않지만 한국은 화재나 구조 요청에 의한 출동이라도 문을 파손하면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긴급, 잠재 긴급, 비 긴급으로 나눈다. 긴급은 즉각적으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인명피해 등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하며 잠재 긴급은 긴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방치하면 2차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단순 시건 개방은 아무런 위험 요소가 없는 비 긴급 상황으로 주택 현관 및 방문 개방, 자동차 문 개방을 말한다. 비 긴급 상황은 가까운 열쇠 수리점을 이용하거나 아파트 경비실에 비상 열쇠를 제작하여 보관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문이 잠겼을 때는 자동차 보험회사를 연락하여 자동차 문 열 수 있다.



어머니가 지병이 있으신데 전화를 안 받는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는 긴급 상황일 때는 119에 신고하면 된다. 시건 개방은 구조대원, 구급대원, 경찰관이 공동 대응하여 출동한다. 문을 개방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평소 앓고 있던 질환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거나 연탄을 피워서 자살 시도하거나 농약 먹고 숨져 있거나 목메거나 손목을 긋는 상황을 마주해야 해서 초보 소방관이었던 내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신고자는 어머니였고 딸이 2일 동안 연락이 안 되어서 신고하여 출동했다. 열쇠도 없고 신고자도 현장으로 오는 중이었고 문을 부수길 원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줄을 타고 베란다로 진입하는 방법뿐이었다. 구조대원 2명은 4층 빌라 옥상에서 줄을 연결하고 하강하여 3층 베란다로 진입하였다. 베란다에 창문이 열려서 바로 진입할 수 있지만 창문이 닫혀 있는 경우에는 창문을 부수고 진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구조대원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4층 현관문 앞에서 구급 장비를 들고 들어갔다.



여학생이 죽어있었다. 책상에 유언으로 보이는 종이 한 장과 농약으로 보이는 병이 한 병이 놓여 있었다. 함께 싸늘하게 식어 있는 여학생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함께 온 구조대원과 학생을 바닥에 눕혔다. 학생은 호흡과 맥박이 없었다. 심장 리듬은 심정지 상태였다. 현장에서 가슴압박을 하였으나 심장 리듬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음독자살 추정 심정지 상태(농약을 먹고 자살한 상태)로 의료 지도의사와 병원에 환자 상태를 알렸다. 구급 차량에서도 가슴압박은 계속되었다. 가슴 압박하는 동안 이마에 땀방울이 식어가는 그녀의 가녀린 팔에 떨어졌다. 사이렌마저 슬프고 애처롭게 들렸다.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 응급실로 들어섰다. 응급실 앞에서 응급실 담당의가 서 있었다. 응급실 안으로 환자를 이송하고 침대로 옮겼다. 의사는 차갑게 식어 버린 학생을 확인하고 사망 선고를 한 뒤 하얀 시트를 덮었다. 구급일지를 쓰고 응급실 문밖으로 나가는데 아이의 부모가 다급하게 지나갔다. 응급실 자동문이 스르륵 닫히기도 전 절망에 가득 찬 울음소리가 퍼졌다.


“엄마 왔어. 어서 일어나 봐. 얘야.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미안해.”


응급실 앞 구급 차량에 장비들을 정리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꽃다운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시도했을까.’ 마음이 아팠다. 울고 있는 내게 구급대원 선배가 말을 했다. “슬프지. 그렇게 감정적이면 소방관으로 오래 일하기 힘들어. 힘내.”


“네... 에. 슬프지만 이겨내 볼게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선배님.”


구급 차량의 장비들을 정리하고 소독하여 소방서로 돌아가는데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조금 전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정신을 차리고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며 출동한다. 오늘도 무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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