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남이였다

by 청아 장혜남


오래전에 ‘아들과 딸 "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쌍둥이로 태어난 이 두 남매는

아들은 귀해서 귀남이고 딸은 행여 그 귀한 아들 앞길 방해되지 않을까

염려에 앞선 엄마의 기세에 눌려 구박 받던 내용의 드라마 였다.


실제로 우리 시대엔 어느 집이나 아들은 귀했고 딸은 그렇치 못했다

태어나면서 이미 서열이 정해진 시대에 살았다.


우리 엄마는 1녀 5남의 집에 맏딸이자 외동딸 이셨기에

딸 셋을 내리 낳으셨음에도 워낙에 남자들 속에서만

살았던 탓에 아들을 못 낳아도 서운함을 느끼지 못했고 아버지 또한

그러했다.


그러다 넷째인 내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딸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아들을 낳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생겼다.

주위에서 내 이름을 남자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부추기기 시작했고 엄마는

은혜 惠 돌림인 네게 차마 남자 男 자를 붙일 수가 없어서 남녁 南 자를

붙였노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남녁 南 은 이름에 붙이는 한자가 아님도 알게 됐고

살면서 예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늘 부러웠고 내 이름이 싫었다.


다행히 다섯 번째에는 귀한 아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후

그 아들은 귀남이로 바로 위 누나인 나는 후남이로 살아야 했다.


귀남이는 늘 좋은 것만 먹이고 입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려 했고

입주가정교사를 붙일 만큼의 아주 여유로운 집안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귀남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부터는 입주가정 교사 까지 붙여준 반면

고등학생인 후남이는 학원 조차 보내 준 적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는 소위 말하는 치맛바람 깨나 날리셨는데

그것은 오로지 귀남이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담임 선생님이 내게 “너희 엄마는 네 동생만

자식이고 너는 자식도 아니라더냐” 라고 한 말씀 하신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후남이로 산다는건 관심 밖에서 스스로를 달래고 혼자 살아 남는 법을 익혀야만 했다.

엄마의 편애는 나이 들어서도 멈출 줄 몰랐고 그런 엄마에게 나중에

얼마나 아들 덕 보는지 두고 볼 거라며 막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 아들은 퇴직과 동시에

나이든 엄마를 우리 딸들에게 부탁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떠받들어 키운 자식 치고 부모한테 효도하는 자식 잘 보지 못했다.


나는 후남이로 자랐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참을성을 배웠고 양보속에서 깊어졌고 무관심 속에서 단단해졌다

다행히 외향적인 성향 탓에 친구들을 좋아했고 그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친구들은 내가 참 잘 웃는 웃음이 많은 아이 였노라고 회상 하곤 한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귀하다는 것은 태어날때 부터 정해지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끝까지 잘 살아내는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이름 이라는 것을,


그리고 딸들이 귀남이로 살아가는 이 시대가 누군가의 후남 이었던 시간들을

조용히 위로해 주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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