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에만 의존한 '선수의 미래 예측의 허구성'에 관하여.
제가 과거 즐겨했던 Ys나 드래곤퀘스트 같은 RPG(Role Playing Game) 게임 속 캐릭터는 육성 방법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소위 말하는 '레벨 노가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면 일정 수준까지의 성장은 손 쉽게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레벨 노가다 -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몬스터를 반복해서 잡음으로써 경험치를 쌓고 이를 통해 체력, 정신력, 그리고 보다 나은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보유 금전 등을 향상시킴.)
게임을 진행하면서 현재의 레벨을 수치로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향후의 성장 플랜을 계획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달성하게 될 미래의 모습 또한 비교적 높은 확률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란 결국 정해진 알고리즘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MMORPG)은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는 예측이 힘든 상대 캐릭터들과의 교류는 게임의 난이도를 한층 끌어 올립니다. 그럼에도 나의 캐릭터의 미래의 모습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과 같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제한된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게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캐릭터로 나서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프로야구(또는 프로스포츠)는 상황이 다릅니다. 정해져 있는 게임의 진행 규칙을 제외하면 선수 간의 상호 작용의 한계를 결정 짓는 알고리즘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게임처럼 '경험치를 먹인다'고 해서 무조건 레벨이 선형적으로 상승하는 그러한 '레벨 노가다'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선형적으로라도 상승하면 다행이겠습니다만, 혹자는 오히려 퇴보하기도 합니다.(이러한 까닭에 저는 경험치를 먹인다...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앞선 기고문 등을 통해 누차 강조드린 바 있습니다만 데이터 분석, 매우 중요합니다. 선수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수치화, 시각화 시켜 '현재의 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저 선수는 떡대가 딱 벌어진 게 전형적인 4번타자 감인데? 타구 비거리도 엄청 나. 저 선수는 팔 휘두르는 동작이 시원시원하구만. 공 끝도 예리해. 차세대 에이스 감이야' 라는 식의 주관적 감상에 의지하여 평가하던 시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이제 각 프로구단들은 데이터 분석의 활용을 통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좀 더 '높은 확률'로 갖출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 시스템을 통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AI 범죄 예측 시스템 프리크라임'처럼 선수의 미래 가치 마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인간의 퍼포먼스 관련 데이터 분석은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설계하고 이의 달성을 추구하는 복합적인 프로젝트 시행에 있어 주어진 일부의 역할(객관적 결과 검증 및 현상 확인)을 수행할 뿐입니다. 목표 달성의 핵심은 이러한 데이터 분석을 넘어 선 그 다음의 Step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인간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무수한 외생 변수에 대한 고려 없이 데이터 분석 만능 주의에 빠져 선수들의 미래의 모습을 주가 예측 하듯 섣불리 예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 대목에서 전 세계 프로리그 전반에 걸쳐 쉼 없이 반복되고 있는 '수 많은 유망주들의 실패 사례와 FA 먹튀 사례'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데이터 없이 이들 선수들을 덥석 덥석 잡았겠습니까.
결국 실패로 귀결될 듯 보이는 3단 합체니 홈플레이트 이전 공사니... 하는 납득하기 힘든 시도들은 바로 이러한 오만이 낳은 산물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KBO 역사에 길이 남을 놀라운 행태들의 반복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은 그저 까맣게 타 들어 갈 뿐입니다.
데이터, 모쪼록 용도에 맞게 효과적으로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인간의 미래 가치를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다면 굳이 프로야구단을 운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라면 그 길로 세계 정복에 나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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