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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Aug 14. 2024

무엇을 위한 1,000만 관중인가?

KBO리그가 1,000만 관중 시대를 열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프로야구는 모두가 우승 후보인 시즌 초반(4~5월)에 흥행몰이를 하다가 휴가철인 7~8월에 소강상태를 보인 후 9월부터 다시 가을야구 진출이 확실 시 되는 팀 위주로 흥행을 이어나가는 패턴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여러모로 이례적입니다.


혀를 내두를 만한 찜통 더위 속에 일부 경기가 취소(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7, 8월 평균 관중 수(약 14,800명)는 시즌 평균 관중 수(14,600명)를 웃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리그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 20~30대 여성팬들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NC다이노스의 광팬이 된 한 유튜버(30대, 여성)가 "야구가 대세인 이유"에 대해 눈여겨 볼 만한 분석을 내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즐겼던) 콘서트, 뮤지컬, 영화, 음식, 기타 등등의 가격이 진짜 많이 올랐다. 그런데 야구는 어떠한가. 단돈 1만 원으로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선망하는 야구선수, 치어리더를 (접근이 힘든 아이돌들과는 달리) 바로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그것도 무려 매주 6일 씩이나! 

어디 이 뿐인가? 도파민 팡팡 터지는 응원전을 만끽할 수 있고 운 좋으면 야구공도 획득할 수 있다. 

자유도 또한 높다. 콘서트 장과는 달리 경기 중 야구장 구석구석을 내 안방처럼 돌아다녀도(객석→매점→샵→화장실 등) 제지 받는 일이 없다. 오히려 환영받는다. 

워터페스티발 같은 이벤트도 흥미롭고 자연 워터밤(=비)도 너무 신난다.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마치 10년은 알고 지낸 듯 나에게 호의를 보인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

야구야말로 진정한 지상돌이다.

내가 만나러 갈 수 있는, 나에게 직접 반응해주는 아이돌!

이러한 야구가 연장전으로 인해 밤 12시까지 진행된다면 더 고마운 일이다."


어떻습니까? 

흥미롭지 않습니까?


최근 들어 유행을 쫓아 프로야구를 찾기 시작한 이들에게 있어 메인(본질) 콘텐츠인 프로야구 경기와 그 파생 상품/서비스들(굿즈, 먹거리, 이벤트 등)이 도처에 자리하고 있는 경기장은 최고의 이벤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프로야구가 생명력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본질인 경기력 향상에 충실해야 합니다. 치킨 요리에 비유하자면 경기력은 육질, 파생 상품/서비스는 양념인 것입니다.


양념 맛이 아무리 빼어나다고 한 들 요리의 본질인 육질이 불량하다면 그 치킨 요리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육질과는 달리 양념은 유행을 탑니다. 이는 오늘 모두가 선호했던 양념이 내일 모두의 관심에서 한 순간에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허니버터칩, 탕후루, 대만카스테라, 먹태깡 등의 사례를 떠올려 보십시오)


현재 KBO리그의 흥행은 10년 전이나, 1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크게 달라진 바 없는 구단의 노력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팬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유행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현재의 추세를 최대한 이어나고자 노력하되 곧 뒤를 새로운 트렌드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고객을 중심에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트래픽(Traffic)이 몰리는 곳에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존재 의의를 명확히 정의하기 힘든 국내 프로야구단들은 현재의 흥행의 파도 위에 그저 둥둥 떠다니기만 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 기회를 잡아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윤의 창출과 주주들의 부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주식회사인 구단들의 지상 과제임에도 이들 구단들은 주식회사 답지 않은 행보를 지난 40여 년 간 보여왔습니다. 모기업의 지원에 극단적으로 의존해왔던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 인해 일을 하든 안하든 적자를 내든 말든 구성원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오로지 가을야구 진출에만 달려있는 기형적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프로야구단 운영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표방했던 일부 구단들의 모기업(B2C 비즈니스 중심) 주가를 살펴보면 과연 그러한 시너지가 존재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모기업의 지원에 예속, 종속되어 있는 프로야구단은 예기치 않았던 심각한 위기(모기업 지원금의 축소 또는 중단)를 겪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얻어 걸린 것이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이든 프로야구계는 전례 없는 1,000만 관중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객들을 향해 백 번 절을 해도 모자랄 만큼 고맙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물 들어 올 때 노를 저어라. 


현재의 뜨거운 열기를 10개 구단 모두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어엿한 주식회사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가치있게 활용하지 않으면 1,000만이라는 숫자는 그저 허상일 뿐입니다. 


- 스포비즈가이드 김경민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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