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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정 Oct 23. 2024

[행정실장의 관점 1]

교문이 위험하다

지난 6월 24일, 청주 모 고등학교에서 70대 경비원이

철제 정문을 열다가 깔렸고,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갑자기 신문 기사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서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결과, 연합뉴스 보도 자료에 의하면,

2024. 10. 21. 교장과 행정실장 등 총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는 소식이다.


지금은 경찰청의 송치니까,

이후 검찰의 조사와 기소 여부,

그리고 재판 결과까지 기다려볼 여지는 있다.


교장은 직원 관리 감독 소홀이고,

행정실장 등은 재난안전 법에 근거한 교육부 지침상 월 1회 교문 등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을 해야 하는데,

행정실장 등 학교 관계자 3명은 이를 어긴 혐의다.


우리 학교에도 올해 들어서서 교문과 관련하여

두 개의 작은 일들이 있었다.

생각난 김에 적어본다.


하나는 교문 교체 시도였고,

둘째는 교문에 교통안전을 위한 차단기 설치였다.

결과적으로 둘 다 무산되었다.


불과 한 달 전쯤, 목적 사업비 중 일부가 남아서 교육청에 반납한다는 계장님 이야기를 듣고,

돈의 새로운 사용처를 찾고 싶어서

우리 학교 교문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다.


사진처럼 겉보기는 멀쩡하다.


그러자 설치한 지 13년이 넘었고, 철제 등이 부분적으로 부식되었다.

물론, 청주의 모 고등학교처럼 당장 이용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행정실장의 관점에서 여러 우려가 있었다.


가장 큰 염려는 그 사고처럼

당직자나 지킴이 선생님이 정문이나 후문을 여닫으면서

육중한 고철 덩어리가 레일을 벗어나는 일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정문이나 후문의 문짝들이 레일을 벗어나는 순간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누구든 밟히거나 눌리면 대형 사고를 면할 수 없다.


두어 달 전에는 출퇴근하는 교직원 차량이 교문 끝자락과 부딪침 사고가 있었다.

당시에는 충돌 부위가 경미했고, 교문 이용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며칠 후부터 레일 바퀴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업체를 불러 수리했다.


교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하던 차에

불용 재원 반납 이야기에

교문을 좀 가벼운 걸로 교체하자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계장님과 결재권자에게

교문을 직접 여닫는 시연도 하고

필요성에 대해 설명도 했다.


그러나 깨끗하고 말짱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기능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두 분 모두 적극적인 찬성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생각이 조금 바뀌면서 포기했다.

즉, BTL 학교의 특성상, 시설물에 대한 유지 관리 책임은 전적으로 시행사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다.

또한, 'BTL 학교의 시설물 설치나 교체에 학교의 독자적 판단으로 자체 재원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청 방침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내가 시도한 교문 교체를 위한 불용액 사용의 시도와 발상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마무리되고 말았다.

며칠 후 불용액 반납 공문을 시행했다.


교문에 설치하고자 했던 안전 차단기가 학교 현안으로 대두된 것은 6월 즈음이다.

안전생활부에서 이번 학기 초, 교육청의 예산 신청 공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23년 8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흉기 난동 사건이 있었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무단 침입한 졸업생이 앙심을 가진 교사에게 칼부림을 했고,

이로 인해 피해 교사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았다.


내 생각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교 출입 관리 강화를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

학생 보호 및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이다.

목적이나 사업 의도에 공감한다.


금년 3월 초 시행된 공문에 의거 우리 학교도 정문에 차량 안전 차단기 설치를 신청한 것이다.

6월 정도에 예산이 교부되었다.


사업부서에서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 확보를 위해 교문 안쪽에 안전 차단기를 가급적 빠르게 설치하고자 했다.

공사가 빠르게 추진될 경우,

안전 차단기 시공 후 주차장 공사 때 재포장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왕 사업을 해야 한다면, 서둘러 추진할 일이 아니고,

BTL 시행사 측에서 8월에 예정한 주차장 보수 공사 시에 함께 해야 한다"라고 설득했다.

재정 낭비 방지를 위한 조언이었다.


그런데, 행정실장인 내 관점에서는 큰 이견이 있다.


교육 활동이나 정책 실현을 위해 사업 부서에서는 얼마든지 교육청에 예산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을 교부받은 이후 계약 체결 등 실질적인 사업 추진은 행정실에서 감당할 영역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업은 행정실과 사전 협조가 필요하며,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도 있었다.


내 관점은 이렇다.

교내 안전 확보를 위한 외부인 차단은 필요하다.

그러나 차량용 안전 차단기를 설치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안전 차단기를 왜 설치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교내 출입 차량은 교직원과 학부모가 주요 대상이다.

"왜 차단기를 설치하려고 하느냐"라는 내 물음에 관계자 의견은 이랬다.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에 학부모 등의 차량이 무단으로 교내에 들어온 것을 통제하고 싶어서다"

업무 과정에서 내 생각과 달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하는 편이지만,

이 대답은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8월에 들어서면서 BTL 시행사의 주차장 공사가 추진되고,

안전 차단기 설치를 위한 업체 선정과,

계약을 추진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나는 의사를 완곡히 표현했다.

학교의 구조적 특성으로 "저는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다.

모든 계약의 최종 책임자는 학교장, 예산 지출의 최종 책임자는 행정실장인 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계약 추진은 교장이 하겠다면 하는 것이다.

다만,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행정실장은 최종적인 대가를 지출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교장은 교육청에 압력을 넣어서 행정실장을 다른 학교나 기관으로 발령낼 것이다.


자주 목격되는 일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각 급 학교에서는 교장과 행정실장의 친밀도나 관계 정도가

교내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


협조적인 행정실장이 될 것인가?

지출원으로서 전문성과 권위를 바탕으로 교장과 대립하면서 행정실장의 위상을 고립무원처럼 세워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행정실장이라면 한 번쯤 되뇌는 문제다.


나는 전자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3년째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단 한 번도 교장이나 선생님들의 사업에 대해

반대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교장실에서 최종적으로 사업 추진 여부를 협의한 자리에서도 이것을 전제했다.


"저는 교장선생님이 추진하는 사업에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안전 차단기의 설치 목적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관점이 다릅니다.

누구를 위한 안전 차단기 설치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출입하는 분은 대부분이 재학생 학부모이고, 보통의 경우는 학교에 차량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다치거나 장애를 가진 학생의 부모라면, 저라도 차량으로 등하교시킬 것입니다.


그런 경우까지 학부모 차량의 학교 출입을 통제할 수 없으며,

안전 차단기에 이러한 학부모 차량을 등록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출근 시 안전 차단기 고장이 나거나 하면 교직원의 차량 진입이 늦어질 것이고,

이로 인해 교문 밖까지 차량이 늘어서서 주변 도로의 정체를 유발할 상황도 예상됩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에 안전 차단기를 아예 열어 놓고 운영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차단기 설치의 의미나 효과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일과 시간이라면, 교문 지킴이 선생님이 안전 차단기를 관리해 주실 것이나,

아침과 저녁 시간에는 누가 관리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진입 차량에 대한 안전 차단기 작동을 위해 차량 등록 업무가 새로 유발되는데,

교무실과 행정실의 갈등으로 비화될 것입니다.


거기다 설치 위치 문제도 있습니다.

안전 차단기의 차량 인식을 위해 교문 안쪽으로 4~5m 이상 들어와야 하는데, 학부모 총회 등의 행사 때는 운동장으로 차량이 진입하여 주차를 합니다.


이때, 카메라 설치 부스로 인해 차량 진출입이 불가능한 상황도 발생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안전 차단기 설치가 필요한 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내 의견이 교장의 생각을 되돌렸는지는 모르겠다.

며칠 후 교장은 안전 차단기 사업 추진을 하지 않고, 사업비를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업비가 불과 1천만 원에 불과했지만,

사업이 진행되었다면, 지금까지도 부서 간 갈등이나 여러 문제들로 학교가 시끄럽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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