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타코의 <금지된 숲의 밤> 개발기
스타트업은 하나의 제품에 몰두합니다. 쿠팡, 배민, 삼쩜삼, 리디북스, 모두 한두개의 제품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를 계속해서 가설, 검증, 실험을 반복하며 좋은 제품으로 다듬습니다. 스타트업이 레슨런(Lessons learned)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레슨런(Lesson-learned)이란 어떤 한 결과에 대해 회고를 하고, 이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레슨런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죠.
게임은 다릅니다. 한번 나오면 끝입니다. 발매 후 디버깅은 가능하지만, 처음 발매될 때의 완성도가 이미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SW와 같은 지속적 개선은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이전 게임들을 통해 학습한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스토리타코는 보기드문 ‘여성향 스토리 게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코스닥 상장사 넵튠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해외매출이 절반 이상에 흑자를 기록한 건실한 회사죠. 스토리타코의 <금지된 숲의 밤>을 통해, 게임회사의 레슨런과 개발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타코 게임개발의 1원칙은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라’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요소를 여럿 갖춰도, 팔리지 않으면 회사가 지속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금지된 숲의 밤>의 제작을 시작할 때 P팀은 다소 의기소침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팀에서 개발한 게임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거든요.
여기서 스토리타코는 글로벌에 주목했습니다. 게임이 실패할 때 비용은 같지만, 한국 시장이 아닌 글로벌에서 성공할 경우, 매출은 10배 이상 뛸 수 있지요. 그래서 팀원들은 레딧 등 글로벌 커뮤니티와 유명 트위터 일러스트 계정을 조사했습니다.
글로벌 유저는 굉장히 다양한 컨셉에 열려있었습니다. 특히 동물의 특정 요소를 인간 캐릭터와 섞은 의인화를 좋아하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중에서도 몬스터, 크리처가 인기가 있었습니다. 비인간에 대한 우리가 가지는 편견과, 그렇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 사이의 ‘갭 모에’가 인기가 있었죠.
그렇게 다음 게임의 캐릭터 컨셉을 의인화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현실과 떨어진 판타지의 느낌이 물씬 풍겨서, 현실과 엮이지 않고 작품으로만 즐길 수 있습니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도 승부를 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해결할 문제는 ‘어떤 몬스터를 의인화’ 시키느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몬스터’ 하면 늑대인간류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식상해서 개성이 없었죠. 서구 문화권에 익숙하면면서도 캐릭터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섰습니다.
그 답은 ‘신화’였습니다. 신화 속 캐릭터는 여러 게임에 쓰였지만 대개 굉장한 힘을 지닌 인간 이상의 존재로 묘사됐죠. 이를 나와 가깝게 대화를 나누는 친숙한 캐릭터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북유럽 신화(펜리르), 구약성경(레비아탄), 그리스로마(미노타우르스) 등 다양한 배경에 어필할 수 있는 것 역시 장점이었습니다.
마지막 캐릭터는 미모, 간교함 등 매력 가득한 한국의 구미호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롤의 아리, 구미호전 등을 통해 여성 캐릭터가 너무 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캐릭터로 변경하며, 동시에 그냥 구미호가 아닌 영물 ‘천호’로 바꾸었습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캐릭터가 아닌, 자손을 번성시키는 신급으로 격상시켜 다른 캐릭터들과 급도 맞춘 것이죠.
캐릭터를 잘 잡았다고 잘 팔리는 게임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지난 게임들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는 많았지만 실패한 예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난 게임들을 회고하며, 유저들이 불만족한 부분을 찾아봤죠. 놀랍게 ‘현실감’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습니다. 너무 현실적인 설정은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만 낳았던 것이죠.
특히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현대배경에서 ‘전남친이 집앞에 찾아온다’, ‘전남친이 기자이고, 내 이야기를 맘대로 알릴 수 있다’라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이는 현실적이라서 몰입감을 높인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반대로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이라 심리적인 불쾌함을 느꼈다는 유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지된 숲의 밤>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설정으로 제작했습니다. 애초에 구미호나 펜리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죠. 그런데 그 캐릭터가 잘생겼어요. 오히려 좋죠.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설정을 통해, 플레이어는 안정감을 가지고 캐릭터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시나리오 역시 중요합니다. 과거 실패한 게임들을 돌아봤을 때 재미없는 시나리오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잘 안 팔리는’ 시나리오는 있었죠. 바로 ‘위기감이 약한 시나리오’입니다.
스토리게임의 주요 매출은 ‘선택지’에서 나옵니다. 중요한 선택지를 고를 때 ‘게임 내 재화’가 필요하죠. 매일 출석하거나 광고를 보면서 재화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해당 시나리오를 빨리 보고 싶어 결제하는 구조입니다.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주인공이 즉사 위기를 겪지 않고 천천히 죽어갔죠. 게이머들은 당장 다음 시나리오를 보기보다 천천히 게임을 즐겼죠.
그래서 <금지된 숲의 밤>은 긴박한 상황을 여럿 넣었습니다. 설정상으로도 잘 맞았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진 캐릭터이지만 크리처들입니다. 언제 주인공을 해칠지 모르죠. 이런 시나리오를 통해 <금지된 숲의 밤>은 선택지를 통한 매출이 전작 대비 10배 높일 수 있었습니다. 매출이 높아졌음은 유저들이 캐릭터와 시나리오에 빠져들었음을 의미합니다.
유저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바닐라팀에서 제작하는 단일앱*에서 진행하지 않았던 업데이트를 실험적으로 진행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DLC 개념으로 추가 시나리오와 코스튬을 판매했고 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실험적으로 시도한 업데이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바닐라팀은 크리스마스 업데이트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긴박감을 주며 선택지를 통한 매출을 높이면서, 또 한가지 고민이 따라왔습니다. 무과금 유저에 대한 배려죠. 게임이 인기를 끌려면 과금 유저 만큼이나 무과금 유저도 중요합니다. 이들이 게임을 소문내며 과금유저를 끌어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절충안으로 ‘광고 제거’를 추가 BM으로 삼았습니다. 그 전까지 스토리타코 게임의 BM은 1) 유료결제 2) 광고, 두 가지였습니다. 유료결제한 사람은 돈을 냈는데 왜 자꾸 광고가 뜨냐는 불만이 있었고, 무과금 유저는 진행이 너무 느리다는 불만이 있었죠.
이 사이를 매워준 모델이 ‘광고 제거’입니다. 일정 금액을 딱 한 번만 내면, 이후 광고를 전혀 보지 않아도 쾌적하게 플레이가 가능했죠. 광고로 게임이 끊기지 않자, 더욱 쉽게 몰입이 가능했습니다. 이를 통해 <금지된 숲의 밤>은 수익모델을 강화했고, 이후 발매된 게임에도 적용됐습니다.
또한 무과금 유저의 경우 ‘광고상인’이라는 꼬마요정 캐릭터가 광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NPC 꼬마요정을 클릭하면 광고를 볼 수 있는데, 몇 차례 광고를 보면 그에 따라 아이템을 지급한 것이죠. 이렇게 게이머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시하자, 각자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며 매출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금지된 숲의 밤>은 지금까지 40만 달러 매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개 이상에 이르는 스토리타코 게임 중에서도 상위권일 정도로 대성공작이었죠.
하지만 스토리타코 구성원들에게는 단순히 매출 증대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실패에 멈추지 않고, 실패를 잘 분석해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레슨런을 통해 자신감과 문화를 심어줬죠. 또한 그 과정에서 캐릭터, 시나리오, 과금 모델 등 새로운 성공공식을 회사에 안착시키기도 했습니다.
이후 스토리타코의 모든 게임은 당장의 성패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 게임을 통해 다음 게임에서 피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적용시킬 수 있는 점은 무엇일지 면밀히 분석하죠.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스토리타코의 게임 개발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매출액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게임업계에 스타트업의 린 모델을 정착시킨 사례라 볼 수도 있겠죠.
스토리타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저들에게 상상력과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를 지향할 계획입니다.
이런 저희와 함께 게임을 만들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스토리타코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