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험난한 세상에서 안전구역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직장에서 잘릴 염려 없이 평생 근무를 보장받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언젠가부터 내 위의 선배들이 하나둘 퇴직하면서 어쩌다 만나게 되면
선배들은 마치 신비한 바깥세상 이야기 라도 전달하는 듯
세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행복한 줄 알아라, 바깥은 정말 험악하다고 말하곤 했다.
재임 시절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던 공직의 신분으로 보았던 세상과 달리
자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 직면해야만 하는 세상에 대한 고독과 외로움의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퇴직한 선배들은 두부류의 행동유형을 보여주었다
조직에 대한 서운함으로 다른 지역에 가서 살거나 아니면
떠나온 과거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면서 늘 생각 안테나를 과거 조직 세상에
맞추어 놓곤 했다.
두 가지 유형 다 과거 세상이 정리되는 않은 삶으로 보인다.
한 번은 퇴직하는 선배의 퇴임식에 참석했었다.
관리직으로는 최고의 직급까지 오르신 분인데
마지막 퇴임사에서 조직에 대한 그동안의 섭섭함, 서운함에 원망까지 쏟아놓아서
퇴임식장을 일순간에 얼음장으로 만들어 놓았었다.
작정하고 퇴임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선배님의 퇴임식장에서의 발언이 그동안 커 커이 쌓아놓은 울분을 완전히 토로한 속 시원한
자리가 되었는지는 내게는 의문으로 남았다.
어떤 마음의 찌꺼기도 남이 있지 않는 해소의 장이였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 근무를 하고 나면(그분의 경우 40년)
누구의 삶이든 희로애락이 없을 수는 없다.
뒤돌아보니 나의 직장에서도 희로애락은 항상 있었다.
나는 이제 근무기간이 4년 남아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공직에서의 생활이 어떠한 미련이나 애증의 마음도 없이
훌훌 털어 벌릴 수 있어야 나의 다음 시간이 가볍고 자유로울 수 있음을 선배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지만
나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30년째 안전구역 안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내가 속한 우물이 제일인 줄 아는 개구리로 살고 있었고
조직에 대한 크고 작은 불만과 선배들에 대한 원망, 후배들에 대한 섭섭함으로
입만 열었다 하면 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나도 이렇게 살다가는
선배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 않았다.
어느 화장실에 붙어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라는 말처럼 내가 머물고 있는 ‘지금 여기’를 아름답게 마무리를 해야 다음 시간이 빛날 것 같았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직장에서의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했다.
앞으로 4년이 남았는데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무수한 만약에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차고도 넘쳤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것이고
퇴직하기 전에 알았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30년 가까이 거의 비슷비슷한 업무를 하다 보니 새로울 것도 재미있는 것도 없이
습관처럼 반복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직장에서의 판을 새롭게 짜야만 했다.
우선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배움과 교육의 기회를 많이 주어서 후배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 하나의 실천으로 직장 내 독서모임을 주도해서 후배들의 업무 외의 활동에도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선, 후배 공무원, 민원인 등)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돕고
내 업무에서도 주어진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용기 있게 나서기로 했다.
매일 습관처럼 반복되던 일이 내시선을 바꾸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놓으니
마치 시들시들해진 꽃에 단비가 내려 푸릇푸릇 해지는 것처럼 나의 일상에 다시 활기가 넘쳐났다.
선배님들 자주 만나서 세상 이야기 자주 나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