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을 넘어 통일을 향해(지율)

110.시

by 지율

스스로 얻지 못한 해방,마냥 기뻐할수 없었네

나라없는 민족에 설움의 끝,우리는 스스로 역사를 자정할 기회도없네

북위 38도선을 긋던 다른 나라.


우리는 우리 민족 스스로 해방하고,건국하고,독립 하지 못했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사상과 이념의 굴레로 한반도에 지울수 없는 상처

한민족 스스로 한반도에 온전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세우지 못했던 시간


위태롭게 고요 하던 나날들

1950년 6월 25일 남침으로,대한민국 전역은 병탄 되었네.

이땅에 지도자들은 철교를 끊었네.


대통령과 내각이 떠난 서울

조국수호에 청춘을건,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1기,2기 생도들

전쟁으로 임관을 앞둔 1기 생도,입교24일된 2기생도


국민을 위해, 무명 헌신 하며, 청춘을 태우며 산화한 생도들

죽음의 1기,2기, 비운의1기, 2기 라는 이름뿐, 그들에 이름을 찾기위한 후배들

그들에 무명 헌신한 위국헌신 정신으로 그의 후예들이 이땅에서 배우고 익히네


이제야, 그들에 이름을 70여년 ,지나 찾아주는 후배생도와 후배 장교들

이름도 ,기수도 한번 찾아주지 않던, 호랑이 유격대1,2기 그리고 육사2기

그들은 자신들에 청춘을 불꽃처럼 태워, 이땅에 대한민국을 지켰네


그들은 생도 였지만, 그들은 참 군인 이였네.

그런 청춘들에 피로 이땅에 대한민국,대한민국 국민,다음세대를 지켰네.


인천,1950년 9월 15일 성공한 국군과 UN군에 인천 상륙 작전

그렇게 7만여명에 젊은 청춘들은 서로를 도와 서울의 봄을 되찾았네.

1950년 9월29일 그들은 중앙청 청탑 위에서 대한민국 태극기 펄럭이네


통일된 대한 민국을 꿈꾼 청년들에 당당한 걸음이 1950년 10월1일

그 걸음이 북위 38도선을 국군장병들이 넘었네.

통일에 앞에서 국군은 원산과 흥남에서 철수 해야만 했다네


휴전 협상

북위 38도선 그사이 1분1초가 다르게 바뀌는 고지들의 주인

협상장 에는 양보는 없었고,수차례 결렬


국가는 얼마나 더 많은 부모 에게서, 얼마나 더 많은 자녀를 뺐으련지...

1950.06.25 남침

1953.07.27일 휴전 협정 까지. 느려진 협정은 청춘 장병들을 병들게 했네.


언젠가, 10월 1일은 국군뿐 아닌, 국민이 오가는 진정한 대한 민국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위해 처음 북위 38도선을 넘고,온전한 대한민국

온전한 한반도 최초 민주 공화정 국가 대한민국으로 DMZ숲의 기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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