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의 시간을 기다리며
엄마는 아빠가 아직도 그렇게 미운가요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끊고나서 긴 한숨을 몰아 쉬었다. 여든 넘은 연세에도 엄마의 목소리는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핸드폰을 귓가에 대지 않고 멀찌기 들고서 통화를 했건만 끊고 난 후에도 서슬퍼런 노여움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엄마 노여움의 주된 원인은 10년 넘게 따로 살고 있는 아빠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아빠가 얼굴에 있는 점과 검버섯을 죄다 뺀게 엄마 눈에 거슬렸나 보다.
"네 아빠는 얼굴 검버섯을 죄다 빼서 엉망됐더라. 꼭 문둥이 같아. 그 나이에 미쳤지... 당뇨가 있어서 상처가 잘 아물지도 않을 텐데 뭣하러 그런 짓을 하는 건지 몰라.."
그 얘기를 벌써 몇 번째 듣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아빠의 검버섯 시술에 왜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내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나도 이번엔 엄마에게 핀잔을 주고 말았다.
"나이가 몇 살이든 사람이 자기 얼굴 관리하는게 무슨 잘못이라구 그렇게 화를 내요? 엄마한테 돈을 내라는 것도 아닌데..."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자 엄마는 딸에게 서운했는지 더욱 악에 바쳐서 분통을 터뜨렸다.
"그 인간 여자가 있는 게 분명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피부과도 다니는거지 괜히 그러겠니?"
아뿔싸... 엄마의 분노의 원인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거라 여겨지는 아빠의 숨겨둔 애인을 향한 질투심이었던 것이다.
호적상으론 여전히 부부지만 벌써10년 넘게 따로 살고 계시는 부모님은 명절이나 어버이날 가족모임이 있을 때만 왕래할 뿐 거의 남처럼 지내고 계신다. 따로 사시니 두 분이 다툴 일도 없어 오히려 잘 됐다 싶었는데 엄마는 한 번씩 아빠 얘기를 자진해서 꺼내며 울화를 쏟아내기 일쑤다.
엄마의 얘기를 들어줄 상대로 만만한게 딸인지라 나는 수십년 째 엄마의 감정받이 노릇을 해야했다.
어릴 때는 무조건 엄마의 편을 들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가 성질 고약한 아빠를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엄마의 한과 눈물을 보고 자란 나는 결혼 상대를 고르는 기준이 아주 단순했다. 무조건 아빠랑 반대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빠처럼 가부장적이거나 독선적이고 철두철미한 사람을 피하면 엄마처럼 괴로운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을 테니 그러면 행복이 보장될거라 판단했다. 그런 심산으로 고른 아빠랑 딱 반대인 남자가 바로 나의 엑스허즈번드였던 것.
아빠랑 반대인건 맞다. 키작은 아빠보다 그는 훨씬 키가 크고 깐깐한 아빠와 달리 유순한 성격에 목소리도 작고 말수도 적었다. 나이도 나보다 한살이 어려서 내가 꽉 잡고 살 수 있을거라 판단했었기에 만난지 5개월만에 거침없이 결혼이란 걸 했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아빠랑 정 반대인 이 남자랑 20년 살아본 결과 내가 찾던 사람은 이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고 우리 커플은 적당한 시기를 골라 꽤 평화로운 결별을 선택했다. 만약 결혼 전에 궁합을 봤다면 사주쟁이가 절대 안 된다고 말렸을 커플이 우리 부부였을 텐데 그래도 20년을 잘 버틴 걸 보면 우리의 인내심은 평균 이상이었다고 본다.
엄마가 그렇게 미워하고 흉봤던 아빠에게서 장점을 찾게 된건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다. 엄마에게 감정 이입이 된 채 밉게만 바라봤던 아빠에겐 의외로 많은 장점이 있었다.
아빠의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치밀함과 계획성, 검소함 덕분에 자식들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대학 공부를 모두 마칠 수 있었고 사업실패나 파산, 빚보증 같은 위기에 휘말려 가정이 휘청거린 적이 없었다. 아빠는 지금 10년 넘게 혼자 사시지만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법이 없으시고 말주변이 좋아서 얼마전까지도 결혼식 주례 알바를 하셨으며 자신의 건강관리에 철저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하고 늘 꼿꼿하시다.
엄마는 지난 50년간 아빠의 단점만 후벼파서 천하의 못된 악당으로 만들어 놓기에 바쁜 나머지 아빠의 장점을 하나도 찾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아 보인다. 그 결과 엄마 자신은 고통과 핍박의 역사 속 주인공이 되었고 여전히 억울하고 분통한 삶은 이어지고 있다. 자식들이 아무리 위로해도 엄마의 한은 풀리지 않는다.
아빠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 엄마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것 같은데 우리 아빠는 죽는 날까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실 분이 절대 아니시다.
엄마가 스스로를 결혼의 피해자로 만들어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실 때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다.
"엄마 이제 그만 내려놓아요. 완전한 인간이 어딨어. 엄마나 아빠나 다 사느라고 고생하셨잖아요. 인간이 죽기 전에 할 일은 서로 용서하고 용서 받는 거래요. 미워하면 엄마 마음만 지옥인거지."
내 말에 엄마는 수긍하는 듯 보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제 다 늙은 마당에 그 인간 미워하면 뭐하겠니..."
그러나 엄마가 마음의 독을 버리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남동생 회사에서 올여름에 가족동반 제주여행 숙박권을 제공해 준다는 소식을 전하며 엄마는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하셨다. 이번 제주 여행이 죽기 전 마지막 여행일지 모른다며 힘들더라도 동생네를 따라서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한 엄마의 목소리는 벌써 들떠 있었다. 나는 몇년 전에도 혼자 제주여행을 다녀온데다 8월 휴가철의 붐비는 곳에 가는게 내키지 않아서 사양했다. 그런데 내가 덧붙인 말이 화근이 되어 엄마의 역정을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아들이 부모 모시고 효도여행 간다 생각하고 아빠한테 함께 가자면 되겠네. 아빠도 제주도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넌 네 아빠 성격 모르냐. 가서 또 얼마나 사람 기죽이고 분위기 살벌하게 할지 안 봐도 뻔한데... 그 인간 가면 내가 안 가고 말지."
단둘이 가라는 것도 아니고 아들 부부랑 함께 가라는데 그게 그렇게 싫은건가. 아들의 효도를 왜 엄마는 혼자 독차지하려 하나. 자식 입장에서 부모는 동등하게 고마운 존재인데 엄마가 본인만 부모 대우 받길 원하실 때면 답답한 마음이 들곤한다.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부부가 아닌가. 미움도 원망도 이제 충분히 희석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다. 두 분 다 많이 늙으셨고 이런저런 노환에 시달리기에 연민의 정을 발휘하여 아들 따라서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의 엄마,아빠는 영원히 화해하지 않은 채 삶을 마감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부모님께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다만 영원히 화해하지 않을 나의 부모님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려 한다.
살면서 인간이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자비가 '용서'라고 하는데 인간에게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나의 부모님을 보면서 깨달았다. 용서하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인간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지도 처절히 실감했다. 나는 남은 내 인생의 모토를 '용서'로 삼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비심을 달라고 매일 '기도'한다.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를 탓하는 오만함과 옹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끊임없는 마음수양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것이 믿고 의지하는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라면 훨씬 더 깊고 잔인하게 꽂혀서 영원히 회복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를 곱씹으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자신에게 더 못 할 짓 아닌가.
살아간다는 건 독을 버리는 일이라 했다.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이 상처받은 인간들이 남은 날들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해야할 마지막 숙제일지도 모른다. 상처를 마주하고 수용하고 상처 입힌 자를 용서하려는 마음이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건 본인 의지로만 구할 수 있기에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것 또한 자유다.
늙은 엄마에게 마음의 해독제를 구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순간 무척 가슴 아프다. 엄마가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마음의 독을 버리고 좀 더 평안해지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