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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게 May 25. 2021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무사성사>의 교훈

10년 전 쯤 일본어와 한자를 독학으로 몇 년간 공부한 적이 있었다. 시켜서 하는 공부였다면 분명 괴로웠을 텐데 재미로 하는 공부라 그런지 즐거웠다. 그 때 한자 사자성어의 매력에 푹 빠졌었네 개의 글자로 세상의 깊은 이치를 담을 수 있다는게 아무리 봐도 신기한 마법 같았다.

지금도 가끔 취미 삼아 학창시절 영어 단어장 외우 고전에 나오는 사자성어를  개씩 외운다. 돌아서면 까먹는게 문제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하나를 얘기하고 싶다.


[無私成私:무사성사]

노자의 도덕경에 등장하는 말인데 사사로움을 버리면 오히려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성공에 한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역발상의 철학이 담겨있다.


무사성사의 증인이 될 만한 사람  이 떠오른다. 들의 공통점은 거대한 꿈을 미리 설정하지 않 채 마음의 소리를 따라갔다는 데 있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들어가서 10년간 군무를 추는 무용수로 지냈다.

자신이 수석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 한가운데서 춤을 추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만 더 나은 무용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었고 50세에 은퇴 공연을 할 때까지 현역 발레리나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었다.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에 입성할 때 처음부터 세계적 발레리나가 목표였다면 조연으로 군무를 추어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꿈은 사람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압감 혹은 조급함을 유발하여 인간을 일찌감치 좌절시키기도 한다.


김용택 시인은 30년 넘게 산골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았다. 산골 생활이 무료하던 초년 교사 시절 동료에게 문학전집을 빌려서 읽다가 문학에 눈을 떴고  때부터 헌책방에서 구한 책들을 지게에 지고 나르며 밤새워 책읽기에 몰두했다. 그는 시인을 꿈 꾼 적이 없지만 긴 독서의 시간을 거치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날 시가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고 고백한다. 문학을 한 번도 공부한 적 없는 20대 청년이 오랜 시간의 독서를 통해 자기 안의 시를 스스로 터득하게 된 사연이 참 아름답게 다가온다. 내가 만약 뭔가 된다면 저런 과정을 통해서 되고 싶다고 꿈꿨다. 나는 김용택 시인의 시를 찾아 읽는 애독자는 아니지만 그의 인생이 시 같아서 그를 좋아하게 됐다.


용한 고양이 작가

이용한은 원래 시 쓰는 사람이었다. 마전에 새 시집도 출간했다. 그는 십여년 전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고 한다. 그래서 가정용 비디오로 고양이들을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몇 개월간 꾸준히 찍은 길고양이들의 생사를 다룬 영상은 우연한 기회에 EBS 특집 길고양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영된다. 예상외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시인은 고양이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하나 더 얻는다. 고양이 사진을 담은 그의 에세이집은 지금까지 꾸준히 출간되고 있으며  브런치에도 그의 고양이들이 종종 출몰하여 애교를 부린다. (동물 공포증 있던 나조차 밤 산책길에 만난 길고양이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을거면서 고양이 키우기에 관한 책까지 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관심에서 시작된 일은 길고양이들의 애틋한 삶세상에 널리 알렸고양이에게 심하거나 따가운 눈총을 보내던 사람들 따뜻한 시선으로 고양이를 바라보기 시작다.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1860~1961)

그녀는 76세가 되서야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생 농장일을 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다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큰 상실감을 겪으면서 그녀에겐 뭔가 몰두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고 한다. 처음엔 바느질에 몰두했는데 손가락 관절염으로 그마저 힘들어지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그림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평생 삶의 터전이었던 시골 농장의 풍경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는 일에 재미를 붙인다. 어느 약국에 걸려있던 녀의 그림이 미술수집상의 눈에 띄었고 소박하고 천진한 그림들 주목을 받기 시작다. 1953년, 93세의 모지스는 타임지 커버스토리를 장식하였고 101세가 되던 1961년 9월7일 모지스의 날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화가다.

그녀가 붓을 놓지 않고 수천 점의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애초에 국민화가라는 거대한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일에서 얻는 큰 즐거움에 빠져서 오랫동안 그리다보니 국민화가의 영광이 그녀를 따라왔을 뿐.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게 "너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꿈과 목표를 정해 놓고 정진할 때 비로소 꿈을 이룰 수 있고 훌륭한 인물이 된다는 암묵적 진리가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 주입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보니 그 질문이 바람직하지 않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누이고 좋아하는지 탐색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설정한 대로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나이들어서 뒤늦게 계획하지 않은 길 위에서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물질적 보상이나 세속적 성공과 거리가 먼 일을 그저 좋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거나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먼 훗날 그 순수한 몰두가 쓸모 있는 짓이었다는 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까.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혹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라는 말에 현혹되어 오랜 시간 상처 받은 이들에게 무사성사의 가르침이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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