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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상주의 Aug 19. 2024

초현실주의를 잇는 매혹적인 터널, 개인과 정치를 잇다

탐구를 위한 감상/ [Sirens] by Nicolas Jaar


| All These Little Tunnels in It

Pitchfork

니콜라스 자르(Nicolas Jaar). Darkside가 됐든 Against All Logic이 됐든 그에게는 데뷔 LP [Space Is Only Noise]의 흔적이 강하게 뿌리를 잡고 있다. 혹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팬들로 하여금 구태여 연결고리나 비교점을 찾으려고 안달을 나게 할 만한 영향을 남겼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유감스럽게도 그 화려한 영광은 오히려 그가 한 동안 자르라는 예명으로서의 작품 활동을 피하게 만든 요인(요컨대 부담으로 인해)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로부터 5년 뒤의 작품들, 그중 솔로로서 오랜 공백을 깬 뒤에 등장한 [Sirens]에 대해서는 그것이 후속작의 개념은 아니더라도, 여럿의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듯 보였다. 그는 그것들을 '터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표현하였다. 필자에겐 그 각각의 터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시도를 하기 전에 우선 그 원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할 것이란 판단이 서게 됐다.  


Bandcamp
The textures and ingredients of Jaar's music exist in the context of techno-- rhythm and repetition are clearly important to him-- but Space is not dance music. - Andrew Gaerig 

[Space Is Only Noise]는 2011년에 등장한 작품으로 그전까지 그는 주로 미니멀 테크노를 통해 미국 댄스 씬에서 떡잎부터 남다른 어린 천재로서 착실히 발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의 미학은 비록 테크노로 시작했지만 그는 겨우 한 장르의 전문가로서만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혁신가라면 으레 갖추게 되는 '괴상한 모순'과 그것이 마치 특허처럼 자신만이 독점권을 가질 수 있는 '시그니처'로서의 독보성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온 그것들은 인용구처럼 테크노 답지 않은 테크노, 달리 말해 댄스가 아닌 테크노 뮤직이었다. 클럽 사운드의 주가 되었던 사운드를 양분으로 삼은 규정상의 댄스 뮤직임에도 댄스는 추고 싶지 않은 'IDM'과 비슷한 맥락일까? 아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 IDM에는 하다못해 의도가 명백하며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여가며 조금은 슬프게도 스타일이 고착화 돼버렸기에 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작품에는 무한한 공간에 홀로 갇혀 무감각하게 유영하는 듯한 자르의 극도로 음울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더불어 조금이라도 서두름과 요란함을 허락지 않는 또 다른 불가사의함이 있다. 어쩌면 다운템포라는 갈래 안에 한 데 묶어내는 시도는 그나마 유효할 수도 있으며, 모르긴 몰라도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가 간혹 떠오르는 인상 정도는 있다. 


차분함과 절제감으로 체험자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부담 없이 청취하기에 좋은 공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칠 웨이브 음악을 보듯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싶지만 그것이 칠함(chill)의 뉘앙스와 일치하냐고 했을 때 아니, 그보다는 다소 어둡고 건조하다. 비슷하게 어두움이 서려있음에도 차라리 진정 칠한 무드를 논할 것이라면 그 속에는 자연스럽고 나긋한 노스탤지어를 의도한 BOC의 [Music Has the  Light to Children]이 더 옳을 것이다. 그렇다고 [Geogaddi]처럼 유달리 공포스럽거나 꺼림칙한 것도 아니지만 왠지 유령이 주변을 배회할 것만 같은 느낌 또한 없진 않다. 청취자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는 했지만 이조차도 EDM은커녕 팝으로 인정하기에마저 분명 레프트필드에 위치했으며, 오히려 언뜻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은 실험음악에 훨씬 가깝다. 곡에 따라 신시사이저와 전자음으로만 이루어진 댄스 뮤직이라기보다는 어쿠스틱, 사이키델릭, 혹은 현악적인 요소들의 가미에 따라 프라이멀 스크림이 처음 이끈 90년대 얼터너티브나 매시브 어택이 이끈 초기 트립합의 성향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실컷 열거하고 보면 어느 범주나 정의에 대입하든 일부 포함돼 있는 듯 보이나, 정작 깔끔하게 일치하는 구석을 영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본래 그의 주특기였던 테크노나 하우스 가시적인 특징에 따라 일관하지 않을 뿐, 분명 그것 각각의 미학, 이를테면 리듬과 신시사이저 활용 등으로 말미암은 가장 기본적인 틀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앞서 정의한 '댄스 뮤직이 아닌 테크노'라는 명제가 아주 틀리진 않다고 할 수 있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섬유는 그가 추구해 온 미니멀리즘이라는 어느 정도의 공통성을 갖고 정해진 만큼(그러나 그 이상의 포텐셜 에너지를 발산 및 보존하며) 운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바로 그 미니멀리즘이 오피셜 앨범에 이르러 진화를 거치며 초현실주의와 불가해함에 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획득, 아니 줄곧 열거한 모순성비정형성까지 더해지며 씬의 전반적인 관점에서의 독보성에 의해 '이룩'이란 표현이 더 걸맞은 성취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 [우주]로부터 형성된 Triangle 

(좌) Pomegranates / Bandcamp , (우) Nymphs / Serendeepity

각종 음원 플랫폼의 표기상으로 인해 [Space] 다음 곧바로의 자취가 [Sirens]인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두 장의 언오피셜 LP를 연이어 공개한 바 있다. 각각 [Pomegranates]와 [Nymphs]가 그것들이다. 이하 각각을 P와 N으로, [Space]와 [Sirens]도 마찬가지로 본 단락에 한해 각각 Sp와 Si로 약칭하기로 하고, P는 영화 [석류의 빛깔(The Colour of Pomegranates)]의 비공식적/대체적 사운드트랙 앨범이며, N은 동명의 세 가지 EP로 구성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그러나 자르가 피치포크 인터뷰에서 직접 이렇게 밝혔다. 


 And I see a way to imagine Nymphs—which is an album—and Pomegranates and Sirens as a triangle of records. I don’t necessarily see Sirens as LP number two.   


그리고 서로 연결돼 있는 이 세 가지의 조각들은 그룹 다크사이드 활동이나 그 외 참여 작업들로부터도 물론 영향을 얻었겠으나, 가장 원초적인 관점에서 어쨌거나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근원 및 파생됐는지에 관해 주축으로 얘기할 거리는 결국 Sp일 수밖에 없다. 총체적으로 꽤나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한 곳으로부터 출발한 터널은 분명 복수형이며 그 양상은 가지형이다. 가령, Sp와 Si 사이를 연결하는 터널은 여러 개다. 그러면서 Si하고만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P와도, N과도 각각 연결돼 있으며 개별적으로도 Si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만을 가지고 터널에 대해 논하기 곤란하다. 심지어 그렇게 각자 뻗어나간 세 가지 파생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형의 또 다른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그나마 복잡하지 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삼 형제간의 관계라는 비유적인 접근이 제일 현명하겠다. 


그렇다면 과연 각각의 터널들도 약간씩 살펴볼만한 가치가 있을까?

Sp-P

 P는 SP보다도 훨씬 전위적인 앰비언트 뮤직을 듣는 듯하다. 레퍼런스가 된 <석류의 빛깔>은 정석적인 템포와 리듬 및 플롯을 가지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가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 역시 전위예술품인 것이다. 음악에서의 리듬이라 하면 결국에는 그루브일 터. 그러나 [Pomegranates]의 방법론은 그루브보다는 '이미지의 나열'이란 말에 적합하다. 이를테면 인트로 <Garden of Eden>에서부터 소리들은 예술가에 의한 멜로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미지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낯선 소음들을 그대로 현장 녹음하여 볼륨을 높이고 후시작업 정도만 어느 정도 마친 인상이다. 마치 드론 뮤직(Drone Music)처럼 말이다. <Construction> 등에서 도중에 들리는 피아노 선율들은 음향적 요소가 아닌 나열된 이미지에 상상력을 더욱 부여하기 위한 장치처럼 쓰인다. Sp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댄스 뮤직으로서 그루브에 관한 규칙이라도 지켜왔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대립적이다. P에서는 훨씬 극단적으로 최소화하거나 아예 배제해 버린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식이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작품들 중 Sp와 가장 결이 비슷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P이다. P 역시 초현실주의적인 혼돈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하여금 상상케 하는 세계는 명시한 각각의 모티브와 만나 구체적인 범주 내로 유도된다. 이를테면 Sp에서는 드넓으면서 칠흑 같은 우주, P에서는 혼란스러우면서 고독한 시인의 내면으로 이끄는 것이다. 초현실적 세계의 재해석 및 재구현, 둘의 관계에 관해선 일단은 이것 하나만 얻고 가기로 하자.  


Sp-(P)-N

N에서는 어느 정도 다시 댄스 뮤직으로 돌아온다. 비트 형태의 리듬과 그루브가 재소환되고, 최소한 5분이 넘어가는 대부분의 트랙에서 대부분 변칙적이며, SP 시절 자르의 미학처럼 전개도 비정형적이지만 그럼에도 <Don't Break My Love>나 <No One Is Looking at U>처럼 일정 구간에 차분하고 안정된 테크노의 반복적 리듬을 동원하면서 작품 전반에 적당한 활기를 부여한다. 물론 그 활기마저 춤을 추기보다는 IDM처럼 고개를 약간씩 끄덕거릴만한 정도이긴 하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그러므로 N은 충실함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문제와는 별개로 Sp에서도 고수해 왔던 장르음악으로서의 미학과 기본을 일정 회복한다. 그러나 N에게는 삼부작의 집편이라는 SP 포함 다른 작품들은 취하지 않은 구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수록된 EP 내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는 곡들은 엄밀히 싱글이지만 러닝타임과 더불어 우연과 설계 사이를 오가는 일종의 '플롯들'이 존재한다. 즉, N에는 서사성에 해당할 수 있는 무언가가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사란 것은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직관적인 텍스트적 서술이 아닌 추상 예술로서의 묘사라는 방법을 택했기에 한눈에 캐치하기에 곤란할 뿐이다. SP에 보여준 세계관 구현과 P에서 보여준 형이상학적 이미지, N에서 이번에는 추상예술 안의 서사성을 보여준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테다.


| PN 사이를 채우는 이야기, 그것이 [Sirens] 

Genius

우리가 지금껏 SP와 P와 N의 관계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던 작업은 전부 오늘 본격적으로 다룰 작품 Si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Si의 위치는 다소 특이하다. 결과적으로 Si가 마지막에 나왔기 때문에 '순차적인 측면에선 P와 N을 걸쳐 완성된 이야기를 펼치는 삼부작의 최종장'처럼 여기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명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Si는 오히려 둘 사이에, 즉 P-'Si'-N(혹은 N-'Si-P)에 위치해 있는 것이 된다. 무슨 뜻이냐고? Si는 거의 동시에 작업을 이룬 P와 N 사이에 온전하게 채워지지 못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눈에 들어오게 된 공백 내지는 결함, 요컨대 '빠진 조각'을 채워 넣기 위한 작품인 것이다. 이야기의 완성을 위한 것은 맞지만 마무리를 짓기 위함은 아니다. 그리고 그 틈이 정확히 어떠한 부분에서 틈이라고 인식한 것인지에 관해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 셋 간의 긴밀한 연관성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표상으로는 이렇듯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흐름상 최종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과적으로는 P와 N가 공개된 이후의 기간 동안 삶의 변화가 반영돼있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관한 가치관'에 새로운 영감으로 작용해 온 배경들의 반영이다. 이 또한 상당히 모순적이지 않은가? 작품의 앨범 커버 및 비주얼 아트의 방식에 빗대어 설명하면 한층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오피셜 아트워크에 해당하는 사진은 원본(이에 관해선 후술)이 존재함과 더불어 이미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인용된 것이다. 즉, 이미 무엇을 표현할지에 관해선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그 이야기가 바로 삼각관계의 매듭 역할을 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긁어보기 전의 복권 편지지처럼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후 삶을 통한 경험들이 동전, 그 순간과 영감들이 하나씩 '긁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후 마침내 2016년이 되어, 베일은 완전히 벗겨졌고 스스로 어떠한 이야기를 통해 전체를 완성할 수 있는지를 비로소 발견 및 체득해 낼 수 있게 됐다. 그것마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과도 가닿는 개별적이고 사적인 이야기인 채로 말이다. 


| Surrealism &(or Versus) Realism

Pitchfork

[Space] 때부터 초현실주의성은 '니콜라스 자르'로서의 트레이드 마크여왔고, 이는 [Sirens]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P의 인상주의적 이미지 나열 이란 성질이 곧 '콜라주'의 형태로 N은 반대로 형태만 갖추고 있던 서사성이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갖추며 비로소 그 정의에 부합하는 성질로 완전한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각 형태와 성질이 보완적으로 융합하여 빠진 조각을 메꿀 작품을 완성시켰다. 다시 말해, [Sirens]에는 우선 세 전작들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게 된 셈이다. Sp-P-Si-N의 구조는 그리하여 근거가 마땅하도록 정립된 관계를 얻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티스트가 오로지 [Sirens]에만 부여했고 이로써 본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 가지가 더 있으며, 이는 전작들과의 상대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특수한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 한 가지란 작품의 '성질'이라 칭할 수도, '배경'이라 칭할 수도, 혹은 '영역', '정의', '이야기' 등 다른 무엇으로도 칭할 수도 있는 꽤나 입체적이고 복잡한 것이다. 물론 설명하고자 하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필자는 '현실주의(Realsim)'이라는 단어 하나로 축약하고자 한다. 이때 만약 그 특성을 이와 같은 용어로 규정하게 된다면 황당하게도 '초현실주의'와 '현실주의'라는 이율배반적인 특성이 공존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 그것은 필자의 그릇된 해석 및 규정으로 인한 논리적 오류(혹은 오해)인 것일까, 아니면 여태껏 자르의 작품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 역시도 그이기에 저절로 용납이 가능한 예술적인 모순성인 것일까?  


본 단락은 두 가지 특성의 공존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종의 가설들을 내세워 볼 것이다. 이번에는 초현실성을 'Sur',  현실성을 'Real'로 약칭하고자 한다.   

ⓐ Sur과 Real은 독립적이다

두 가지가 기능하는 영역을 구분하여 보려는 것이다. Sur은 지금까지 서술한 대로 '사운드스케이프'에서 구현된다. 그렇다면 Real은 어디에서 구현될까? 그것은 테마에 있다. 본작의 구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에 관해선 후술 할 단락이 별도로 있을 것이기에 명확한 언급을 우선 피하려 한다. 그러므로 이를 최대한 암시적으로 서술하자면, 앞서 작품에는 분명 N의 서사성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구조화된 이야기를 갖추고 있다. 이미 특정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형이상학적으로 대강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N의 서사성보다 훨씬 가시성, 명확성, 체계성 등으로부터 우위를 가져가며, 결론적으로는 더 실체적이다. 그리고 핵심은 그 실체성이 곧 칠레와 미국을 아우르며 '현'사회의 전반에 밀접하게 가닿아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통찰과 목적이 뚜렷한 비판의식의 의도(-ism)는 이야기로부터 모습을 드러내어 그것이 체계성과 통일성을 통해 결국 앨범 전반을 관통하는 큰 뿌리임을 드러낼 때 테마로 연결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테마로부터 비로소 Real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터득한 Real이 Sur과 구별될 수 있는 데 먼저 '사운드스케이프에서의/테마에서의'라는 차이를 내세웠지만, 이와는 다르게(그럼에도 넓게 보면 결국 유사한 맥락으로) '의식/무의식적 표출'이란 측면에서도 구별을 꾀할 수 있다. Real이 의식적, Sur이 무의식적 표출이다. [Sirens]에서의 표출되는 무의식적인 부분은 첫 번째로 유년기의 배경(특히 <Leaves>와 <No>등)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청각적인 노스탤지어로 하여금 그의 회상 방식이 몽상에 가깝게끔 하는 데에 있다. 두 번째로는 철저하게 기술적인 측면에 관한 것인데, 가령 인트로 <Killing Time>에서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신경을 각성시키는 차임(chime) 소리의 도입부를 지나고 나면, 마치 오히려 그것이 최면암시를 위한 수단이었던 것처럼 이윽고 '왈츠 리듬을 가진 피아노 선율'이 침투하며 깊은 우리 스스로의 몽환 및 명상의 영역으로 가라앉도록 만든다. 여기에 덥까지 가세한 이와 같은 앰비언트 뮤직의 접근법을 최대한 활용하며 무의식을 인위적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실은 기존에도 자르가 꾸준히 펼쳐왔던 그의 장기이기에 본작에서도 무리 없이 구현해 낼 수 있었다. 


반면에 의식의 표출은 가사 및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원래부터 특유의 저음으로 종종 자신의 곡에 보컬과 가사적 요소를 활용해 온 그이지만, [Sirens]에서는 보컬이 포함된 그의 앨범들 중 가장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며 모호하지 않은 어법을 사용하는 작품이다. 앞서 서사에 실체성이 돋보임을 바탕으로 테마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다. 이는 최면적인 성격이 강한 사운드의 영역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그리고 그 대비로 말미암아 작품 내 두 특성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여 상충과 모순을 피할 수 있음을 논증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 Alfredo Jaar &  Augusto Pinochet 

Alfredo Jaar / Lousiana Channel

두 번째 가설로 넘어가기 전에, 독립설에 관해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으며 이는 단락 하나를 할애하면서까지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적/Real 영역에 포함시켰던 이야기 안에서도 대비로 간주할 수 있는 두 가지의 하위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개인적' 이야기, 다른 하나는 '정치적'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겠다. 


먼저 [Sirens]의 이야기가 지극히 사적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단락에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볼 차례가 왔다. 이는 늘 니콜라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그의 아버지 알프레도 자르(Alfredo Jaar)과 어린 시절에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심화된다. 그가 소환한 과거는 그의 유아기이기 때문에 대화도 그에 따라 유아적이고 천진난만하며 순수하다. <Leaves>에서 <Nazareth>까지 이어지는 스킷에서 아이의 입으로 발화되는 '동상'과 '사자'에 관한 이야기는 그것이 등장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정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우연히 목격한 바대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꿈에서 어렴풋하게 본 것이 무척 생생하여 아이가 들뜬 채로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하다. 어느 쪽이 됐든 정황의 불확실함과 발화 주체가 유아라는 점, 그리고 역시나 유년기의 회상이라는 모티프로부터 저절로 따라오는 노스탤지어의 발현으로 인해 이야기는 그 자체로 추상과 몽상의 세계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는 충분히 무의식/Sur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Augusto Pinochet / Common Dreams

부자의 대화는 표면상으로 'Privacy'과 'Individuality'에 입각한 철저히 내부를 향한 방식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가족의 상황과 어쩌면 정말로 은유를 위해 창작품에 구태여 소환된 것일 수도 있는 대화를 둘러싼 배경은 반대로 정치/사회적 맥락과, 즉 외부와 밀접하게 결부돼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거론해야만 하는 정치적 인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전 대통령이 있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의 국제화에 비수를 꽂은 인물 중 한 명임과 동시에 '군부독재'로 가장 악명이 높은 것으로 반드시 꼽히는 인물이 되겠다. 자르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투철한 민주화 투쟁-마지못해 실시된 이른바 '국민투표'-권력자의 망명]으로 이어진 역사적 과정이 벌어진 직후 뉴욕에서 출생했다. 그리고 그가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고향에 다녀갔을 때 그곳에는 역사적 투쟁과 변혁의 기록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새로 설립됐고, 그가 그곳에 다녀온 경험이 곧 작품의 방향이 외부로 뻗어나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편 그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정치적 맥락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공교롭게도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가 세상에 나왔다. 이 또한 그에게는 영감이 되었을 것이며 더 정확히는 일종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가능성이란 펑크나 70년대 포크 뮤직이 아니더라도 음악의 힘으로 하여금 역사에 걸친 현시대 자국의 사회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민중 의식을 고양할 수 있음에 관한 것일 테다. 켄드릭라마가 힙합을 통해서였다면, 자르가 곧 댄스 뮤직을 통해서인 셈이다. 어쩌면 켄드릭이 거시적인 담론을 설득력 있게 펼치기 위해 그보다 전작인 [good kid, M.A.A.D. City]에서 자신의 유년기를 소환하는 것부터 출발점을 잡았던 전략을, 자르는 [Sirens]라는 작품 하나 안에서 확장해 나가는 전략으로 약간 비틀었다는 점도 비교해 볼만하다. 어찌 됐든 본 작은 이를테면 컨셔스(conscious) 뮤직으로서의 리얼리스틱(realistic) 일렉트로닉을 의도했음은 틀림없다. 

       

| 개인정치잇다, 혹은 섞다 

The Guardian 

Chapter one: We fucked up

Chapter two: We did it again, and again, and again, and again

Chapter three: We didn’t say sorry

Chapter four: We didn’t acknowledge

Chapter five: We lied

Chapter Six: We're Done 


부자간의 개인적인 대화에서 과거의 칠레 정권을 향한 반발로 확장된 이야기가 <History Lessons>에 이르면 현재 미국 정권(당시 트럼프 집권기; Alfredo Jarr의 사진 작품 'This Is Not America'도 이를 겨냥한 것)을 향한 우려로 이전되더니, 마침내 인류의 파멸을 전조하는 예언가처럼 세계와 역사에 걸친 회의론을 바탕으로 챕터별로 선고를 내린다. 작품 안에서도 가장 암울하고 현실과 가닿는 마무리를 짓고 있는 트랙의 사운드는 그러나 매우 사이키델릭하며 낭만주의적이다. 앞서 사운드는 Sur이고 테마는 Real이라고 서술했는데, 오히려 아웃트로의 마치 가상의 학교 수업에서 묵시록을 교본으로 삼아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컨셉츄얼한 구성이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만나며 그 경계가 모호해진 인상을 준다. 서로 독립된 채 기능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두 특성이 서로의 영역에 교묘하게 침범 및 융화를 이루어 이야기조차 의식으로 확장된듯하면서 여전히 무의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들린다. 어쩌면 이마저도 아웃트로에 한해서 갑작스럽게 교차점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Killing Time>부터 내내 그래왔던 것을 마지막에 발견한 현상인 것처럼 착각한 경우일 수도 있다. 


ⓑ Sur과 Real은 상호공존다:

본 글의 결론이 되기도 하는 두 번째 가설을 꺼내들 타이밍은 바로 이때부터다. 자르는 프로듀서로서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듣느냐에 따라 조화가 불협화음을 자아내거나, 반대로 불협화음이 조화를 자아낸다고 느낄 있다고 밝힌 있다. 본글에서는 이를 프로듀싱과 송라이팅을 아우른 관점에서 조화를 '공존', 불협화음을 '대립(독립)'으로 치환하고자 한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처음부터 상호적으로 공존하고 있던 것이 마치 각자 대비되어 있던 것처럼 보였거나, 대비되어 있던 것이 말미에 이르러 공존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으로 보일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요컨대 공존해 왔거나, 공존하기 시작했거나의 차이인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애초부터 개인(써리얼리즘)과 정치(리얼리즘)는 양립하는 개념이 아님을 음악을 통해서 증명할 수 있음에 관한 의의를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둘은 아주 긴밀하게, 또 묘하게 얽혀있음이 옳지 않겠는가. 프로듀서가 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장르음악으로서의, 현대음악으로서 이를 납득해 낸 것, 그것이 오랜 작업의 목적이자, 그가 얻은 계기의 실천, 창작물에서의 의도, 그리고 마침내 [Sirens]의 성취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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