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이유

이건 다 일론 머스크 덕분이야

by 가람

회사에서 할 일이 없는 날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할 일은 있기는 한데, 업무 기한이 좀 남아서 오늘은 잠깐 다른 것을 해도 되는 하루. 그럴 때면 나는 업무 관련 시장 조사를 한다. 그런데도 시간이 남으면 애인이나 친구와 카톡을 하거나, 개인적인 용무를 본다. 그것도 다 하고 할 게 없으면 (앞서 말했지만, 할 게 없다는 건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할 게 없는 건 아니다.) 별 시답잖은 내용이나 찾아본다.


오늘은 그 모든 루틴을 완료한 뒤에, 무려 ‘세계 부자 순위’를 찾아봤다. 정말 시답잖지 않은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025년 2월 17일 기준 세계 최고 부자는 ‘일론 머스크’. (2위는 마크 주커버그, 3위는 제프 베이조스. 제프 베이조스가 누군데? 이런 생각을 하면 당신도 나랑 동급이다. 아마존의 창업자라고 한다.) 요새 한참 나갈 곳이 많아 지출이 커서 고통받는 나는,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고 하면 아주 관심이 많다. 그런데 네이버 검색창에 ‘세계 부자 순위’라고 쳤을 때는 그 단어의 조합을 검색한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는 했다.


일론 머스크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당연하다. 총명한데 특유의 잘 된 기업 창업가들이 갖는 배팅 능력이 좋아서일 거다. 더 자세히 알 필요도 없다. 그런 비관적인 마인드로 꺼무위키 내용을 보다가 일론 머스크의 어록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됐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살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왜 살고 싶은가?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가?
어떤 미래를 사랑하는가?
나의 경우, 인류의 미래가 성간 비행과 다행성 종족화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우울하게 느낄 것이다.”


그 글을 읽고 약간은 벙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은 ‘나는 이것 때문에 오늘을 살고 싶어.’ 이런 숭고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단지 회사 가기 싫다. 더 자고 싶다. 정도의 감상뿐이다. 그러한 감상은 살고 싶다기보다는 그 반대 의미(죽자!)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하루가 싫고 귀찮은 일들투성이인 거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순식간에 내 회사 생활에 현타가 왔다. 내가 하는 업무는 내가 살고 싶은 이유랑은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서.



최근에 자동차 구매, 이사 등을 하면서 무언가를 사거나 고를 때, 원하는 조건을 리스트업해서 적어두면 꽤 그러한 기준과 비슷한 것을 고르게 된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회사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조건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런 회사’에 다니면 일론 머스크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내가 원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집에서 나와서 40분 이내 거리 (교통수단 포함)

연봉 5,000만원 이상

유연근무제가 되는 곳

근무시간 8시간 이하

출산 및 육아에 호의적인 곳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곳

재택근무가 비교적 자유로운 곳 (주 1회 이상)

퇴근 후 일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곳

연차 보고에 사유가 필요 없는 곳

결재 라인이 복잡하지 않은 곳

문화산업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곳

야근, 주말 근무 없는 곳

경쟁적인 문화가 아닌 곳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회사를 찾아 잡플래닛 후기를 여럿 찾아봤다. (회사에서 잡플래닛 후기를 찾는 대범함!) 그런데 조건들을 만족하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회사가 우리 회사보다 더 별로였다… 이 중에서 몇몇 조건을 만족한다고 하면, 외국계 회사라 특출난 영어 실력이라던가 꽤 많은 경력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유약하고 전공을 살리지 않은 영어 잘 못하는 사회 초년생. 이런 곳에는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데 조건에 맞는 회사를 찾으며 의아했던 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까운 것이 모호한 ‘문화산업’이라는 말뿐. 나는 그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와는 별개로 그저 조건이 좋고 효율적이며 쿨하게 돌아가는 회사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봤다. 해답을 도출하는 과정은 꽤 단순했다.


나한테 던진 질문은 단지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가?’였다. 가끔 폐인처럼 하는 게임, 유튜브, 쓰레드 이런 것들은 쾌락주의적 마인드로 하는 것이라, 정작 업무가 되면 피로도가 높을 것 같았다. 내가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하는 것 중에 몰입도가 높은 일을 하나 꼽으라면 그건 바로 ‘창작’이었다.


wK1jtQacP6-ApUNZXFw6MiedD-Q.jpg 열아홉, 스물의 기록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글이나 음악 등의 창작 활동을 좋아했다. 열아홉에서 스물, 자기 자신 한 번 알아보겠다고 두꺼운 노트 6권을 꽉꽉 채우는 글을 썼다. 그때는 글을 쓰려고 하루를 살았다. 스물 한 살부터 블로그에 올린 아무 말을 적은 글은 수백 개 이상일 것이다. 음악 녹음이나 작사 등 창작 활동을 하면 세세한 거 하나를 수정한다고 컴퓨터를 한참을 붙들고 시간을 쏟았다. 그림은 정말 못 그리지만(미술 수행 점수 최-악) 뭐라도 표현해 보는 걸 좋아해서 무지 노트를 들고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꽤 명료해졌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나 스스로 무언가를 창작해 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빨리 퇴근하고 싶고, 퇴근해서는 무언가를 생산적으로 창조해 내는 일을 하고 싶구나.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고 빨리 퇴근할 수 있는 Cool한 회사를 가고 싶었던 거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 음악 따위를 새로 쓰는 것 외에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엑셀 파일 등을 만드는 것이 있었다. 회사에서 벌써 이런 식의 관리 툴을 몇 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회사에서도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금의 업무는 창작 활동과는 거리가 있는 업무다. 창작이라기보다는 이미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하는 업무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나는 주니어라 내려오는 보고서 작성 지시를 수동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매번 다른 사람과의 주 1회 미팅도 적을 정도로. 나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자주 새로운 사람과 알고 싶진 않다.


그래서 지금 회사가 조건적으로 결코 다른 회사에 밀리지는 않았지만, 워라밸이니 뭐니, 생각하고 있던 거였다. 나는 그저 혼자서 뭔가를 생산해 내며 내 시간을 쏟고 싶었고, 이 회사에 있으면 그것을 충족할 수 없으니까.


현실적인 이슈로 창작과 관련된 업무를 하기엔 내 능력치도 부족하고, 매달 수령하기를 원하는 금액도 맞출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떤 플랫폼에 연재할까 하다가, 챗지피티의 추천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한다. (!)




그래, 나는 업무시간에 우연히 세계 부자 순위를 검색했다가 브런치 작가로서 등단했다.

(아니, 등단은 아니고 저장이다- 이제 이 저장되어 있던 글을 등단한 순간, 정말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지만.)

소설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시를 쓰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나’한테만 관심이 유독 많은 편이라, 에세이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좋은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 가치관,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몹시 즐겁다.


그리고 굉장히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19살 때는 마음에 안 드는 나의 모습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부끄러운 자신을 매 순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어차피 나만 보는 글이니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기저에는 마음에 안 드는 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인정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솔직하게 글을 쓰는 버릇을 들였다. 물론 덕분에 지금 20대 초반의 글을 보면 너무 솔직해서 읽을 수가 없다. (19살~20살 때 썼던 노트 6권은 미니멀리스트로서 쿨하게 버렸다.)


브런치는 타인이 나의 글을 우연히 읽을 수 있는 공간이기에 약간의 미화나 숨김은 있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에서 최대한 진솔한 내 관점을 쓰려고 한다. 그것이 나 답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플랫폼에서는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익명의 힘을 빌려 솔직한 글을 쓰려고 한다. 자주 올릴 생각인데 종종 누군가 들러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