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살기 (1)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by 가람

안녕하세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혹시 어릴 때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었나요? 혹은 그냥 천성이 착한 아이였나요? (아니면 둘 다 아니었나요-)


제 얘기를 좀 하자면, 전 아마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요. 20살 때까지 저는 제가 가진 대부분의 것을 남에게 양보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J에게 양보했습니다. 그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J를 위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으니까요.


나의 욕구, 나의 꿈, 나의 시간, 나의 마음… 나의 일부분을 양보해 왔던 부분은 어른이 되어 보니 큰 슬픔으로 변해 있었어요.


J는 어렸을 때부터 저의 욕구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어요. 물론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은 있었을거에요.

“어디 가기 싫어요.” → “그래도 가야지.”

“가수가 되고 싶어요.” → “공부해야지.”

“도서부로 활동하고 싶어요.” → “그 시간에 학원 가야지.”

“이 친구가 좋아요.” → “걔랑은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행동하고 싶어요.” → “그렇게 하지 마.”

“이 옷이 좋아요.” → “넌 다른 옷이 더 잘 어울려.”

“어디 가고 싶어요.” → “다음에 가자.”

저는 J로부터 저를 부정당하는 의견과,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많이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단번에 “그래, 그렇게 하자.”라던가, “정말 좋은 생각이다.”와 같은 종류의 말을 들은 적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전 착한 아이이다 보니 거의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저의 삶에 대한 의사결정의 주체는 대체로 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어린아이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관성이 되니 나중에는 J가 아닌 타인에게도 의사결정권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론 A를 원하면서) 넌 A가 좋아, B가 좋아? 난 둘 다 상관없어.”

“(속으론 먹고 싶으면서) 너 먹을래? 난 안 먹어도 돼.”

“(속으론 싫으면서) OO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이게 변질되면, 남에게 제가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도 반대로 얘기를 하게 돼요. 왜냐하면 살면서 욕구를 말했을 때 부정 당하고 취득하지 못한 경험이 많았거든요.


선생님: 혹시 반장 하고 싶은 사람?

나: (친구에게) 난 절대 안 하고 싶어. (사실은 되게 하고 싶어.)


(집에 돌아와)

나: 반장이 됐어. 별로 하고 싶진 않았는데 애들이 추천해서… (사실 되게 하고 싶었는데 기뻐.)


꼭 말풍선과 속마음이 바뀐 만화를 보듯, 제 삶의 표현 방식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욕구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걸 무의식이 알기에, 애초에 원하지 않았다고 나를 세뇌시키게 돼요. 그렇게 원하지 않아야만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좋다, 싫다의 감각이 상당히 무뎌집니다. 나조차도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거죠.


“난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어.”

“나는 모든 게 좋지도 싫지도 않아.”


저 스스로 도출한 목표가 제겐 별로 없었어요. 그걸 위해 노력하려고 해도 금방 포기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왜 그렇게 되었냐면 J는 저에게 큰 목표가 의미있다고 수백번 말했으니까요. 점차 저의 작은 욕구(OO이랑 놀고 싶어), 소소한 목표(오늘 영어 시간에 한 마디라도 내 뱉어보자)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J는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 학부모가 쓴 특목고, 자사고 입시 전략을 스크랩하여 읽게 하곤 했습니다. J는 글을 읽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 글의 자녀들처럼 아니면 그에 준하게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실제로 그 학생들처럼 할 수 있었다는 건 아니에요. 간혹 누군가는 욕구를 잊어버린 나를, 그리고 그런 나를 가족으로 둔 J를 부럽다고 말했습니다.


“A는 어쩜 그렇게 의젓할까. 우리 B는 이것도 사달라고, 저것도 사달라고 해서 고민인데~”

“A는 항상 무덤덤해서 대단한 것 같아.”


그게 별 문제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겉으로는 욕구에 휘둘리지 않는 모범적인 사람인 거잖아요. 하지만 글쎄 저는 그 말에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제가 도인 정도로 욕구를 초월하고 그런 존재였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범주가 아니라 '갖고 싶은 게 없고, 대부분을 양보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사람이다 보니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무언가의 감정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어리광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니까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J가 원하는 나를 꾸며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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