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다
https://brunch.co.kr/@6bcff28a5b3d498/23 (1편)
대학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갑자기 저한테 진로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교육은 튀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강요하면서, 대학교 입시부터는 뜬금없이 개성을 강조하잖아요.
자아(自我)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 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 반응, 체험, 사고, 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근데 남에게 선택의 권리를 넘겨 온 자아가 없는 개인이 어떻게 선택을 하고, 어떻게 개성 발휘를 하겠어요. 열아홉살의 어느 날, 저는 별거 아닌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3 담임 선생님이라면 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어요.
“가고 싶은 대학과 가고 싶은 학과, 자기소개서 초안을 써와.”
근데 그 말을 듣고 뭔가를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제가 뭘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고(꿈이 살면서 수십번도 더 바뀌었어요), 어딜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자기 소개도 못하겠는 거에요. 굉장히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습니다. 머리가 하나도 정리가 안돼서 정리를 해보려고, ‘글’이라는 걸 쓰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로 산 공책을 펴서 나에 대한 글을 작성하기 시작한 처음의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건 상당히 생소한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뭔가 두근거리는 감각도 있었어요. 며칠 뒤 저의 노란 공책은 이름을 얻었죠. 꽤 간단하고 명료했어요.
<'나'에 대하여>
수업시간엔 수업만 듣는 거라고 배웠기에, 야자시간이 되어 우등반의 내 자리 한 곳에 앉아서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야자시간 시작 종이 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금새 끝나는 종이 치곤 했어요. 시간과 공간의 방에 있는 기분이었죠. 제가 오랫동안 혐오해 온 나라는 존재와 대화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아니 얘는 왜 이렇게 한심한지 모르겠어요.
뚱뚱하고, 휴대폰 중독이고, 나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내가 아닌 완벽한 존재가 나인양 상상의 나래에 빠지는 걸 즐기죠.
근데 난 왜 얘를 파헤치고, 지적하고,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게 재밌을까요.
글을 써 내려나가다 보면 조금씩 나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20살이 되어서도 미친듯이 글을 썼습니다. 그럼 그 20살을 지난 21살의 나는 나를 잘 알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는 없는 ‘입시생’이라는 지위였기 때문에, 세상이 요구하는 모범적인 학생과 글이나 써 제끼는 무능력한 나의 괴리감에 괴로워하는 나날이 많았죠. 유감스럽게도 20살 때 그런 지독한 자기 비하로 얻은 공황장애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요.
20살 때 수능을 삐끗한 애들이 대거 모여 있는 재수학원에서 처음으로 알았는데, 이 세상에는 야망이 큰 반짝반짝한 학생이 참 많더라고요. 21살이 되어서 대학에 들어가니 반짝반짝한 학생들이 그 꿈을 실천하기에 앞서 한데 모여 놀기 바빴는데 저는 적응하는 게 어려웠어요. 이 학과를 나와서 대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학생 시절 내내 공부는 J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도구였기에 지독하게 하기 싫더라고요.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는 행위 모든 게 정말로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런 학생이 대학생 때 열심히 공부를 했겠어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저는 마냥 숨만 쉬었습니다. 글은 가끔 썼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뼈저리게 고민할 것도 없어서 내가 누군지 고민하는 글은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자취방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떤 여름 방학 때는 밖에 나온 날이 3일 이하인 때도 있었죠. 그런 제가 달라지는 계기가 된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제일 중대한 일 중 하나는 제 안에 있는 거대하고 무력한 내가 ‘우울증’이라는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