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첫째와의 만남

풋내기 대학생과 만만하지 않은 고양이

by 가람

고양이를 처음 데려온 시기는 2019년 3월, 그때는 대학교 3학년 개강시점 때였다.

3학년이긴 해도 한 학기를 휴학해서 4학기를 아직 다니지는 않은 상태였다.

대학생 때 전반적으로 멘탈이 안 좋았는데 그때는 제법 괜찮았다.

그전 학기에 휴학을 하고, 일본으로 9박 10일 혼자 자유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 덕에 수업을 들을 수는 있는 상태 정도는 되었다.


나는 그전부터 교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고양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함부로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교내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으로 절절한 애묘에 대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가끔은 집 근처에 츄르를 짜두고 밤 사이에 사라진 츄르를 발견하면 나 혼자 좋아하곤 했다.

집 근처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는 않았다. 밥을 주고 중성화를 할 만큼 내가 챙길 수 있는 여력은 되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별로 친하지 않은 동아리 후배(여기서 동아리는 놀랍게도 고양이 동아리가 아니다.)

가 고양이 사진을 동아리 단톡방에 올리며 고양이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본인이 동물병원에 갔더니 어차피 집에서 치료하며 키우지 않으면 곧 죽을 고양이라며 반려를 당했다고 한다.

수의사 눈에는 후배가 키울 생각은 없다고 하니, 약을 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던 모양이다.

후배는 적당히 안쓰러운 말투로 본인은 키울 수 없으니 주변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금세 눈이 확 돌아서는 따로 후배에게 연락해서 현재 있는 위치를 물어봤다.

‘고양이 동아리’ 임원이라는 신뢰할만한 타이틀도 있었기에, 후배는 자신이 있는 위치를 술술 불었다.

다행히 자취방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급하게 뛰어가 후배를 만났다.

후배가 들고 있던 작은 종이 상자에는 작고, 검은색의 콧물/눈물 범벅인 고등어 아이가 힘 없이 누워 있었다.

수의사 말이 맞았다. 그 아이는 이 봄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처럼 유약하게 생겼었다.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캔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아무 힘이 없는 듯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는 일단 내가 찾아보겠다며, 고맙다며 연신 굽신거리는 후배에게서 바닥이 따뜻한 상자를 받아들고 집으로 갔다.

고양이가 너무 작고 안쓰러워서 상자 안을 힐끗힐끗 보며,

그렇지만 미안하게도 조금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동물을 키우면 안 되는 집이라 주택 입구서부터는 상자의 입구를 닫고 조용조용 올라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바로 닫았다.

따뜻한 상자를 따뜻한 바닥 위에 올려놓고, 눈을 뜰랑 말랑한 작은 고양이에게 막 딴 츄르를 내밀었다.

고양이는 츄르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건 챠오 츄르였는데.

나는 이 고양이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 밤을 함께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포근한 수건을 덮어주고 꼭 죽은 것만 같은 고양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꼭 감고 한참을 죽은 듯 자던 고양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

갑자기 나와 눈을 맞추고 크게 고래고래 울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작은 고양이라 울음소리가 크지는 않았는데,

그 맑고 얇은 목소리가 ‘애-옹’, ‘애-옹’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니 무언가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얘. 살 수 있는 아이일지도 몰라.’


그래서 무작정 고양이가 든 상자를 들고, 택시를 타고, 근처 늦게까지 한다는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근데 후배가 갔던 동물병원과 동일한 곳이었는지 수의사가 고양이를 보자마자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아까 왔던 애네요. 얘 그냥 방치하면 죽어요."


수의사의 그 말의 의미는 너 같은 대학생 애송이는 책임감도 없으니 죽을 애 희망고문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제가 얘 키울 거예요. 방생할 생각 없어요.


라고 불현듯 말했다. 그건 어쩌면 객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살려보고 싶었다. 아까 그 아이가 나에게 나 여기 살아있노라고 메시지를 줬으니까.

다행스럽게도 그 아이는 약을 잘 먹고살았다. 캔을 안 먹었던 건 음식을 먹을 줄 몰라서였다(!)

어미젖만 빨아본 아이라 뭔가 덩어리 진 걸 삼키는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처음엔 뭘 해도 안 먹어서 주사기로 강급을 했고, 먹어보니 맛있는 걸 알았는지 나중에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먹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벌써 그 고양이랑 함께한 시간이 6년이다.

그 당시 나는 자신은 돌볼 줄 몰랐으면서 다른 존재들에 대한 책임감은 강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내가 키우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책임지기 위해 인생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내 꿈 중 하나는 대학생 때 독일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었다. 일단 그걸 가볍게 포기했다.

그리고 내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걸 용인해야만 했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는 1살이 넘을 때까지 나를 물어뜯으며 놀았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물어댔다. 입질이 정말 심한 고양이였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생각을 멈춰달라.

최소 10권 이상의 고양이 행동학 책을 읽고,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를 천 번 이상 들락날락거렸으니.

하라고 하는 거는 거의 다 해봤다. (물면 다른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지만-)

나중엔 하다 하다 애니멀커뮤니케이터도 써봤는데, ‘이렇게 해야 누나가 빠릿빠릿해.’라는 답변을 들었다.

(충격..)

근데 그 이후 얼마 안 되어 이사를 해서인지 무엇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눈에 띄게 줄었다.


내 몸은 상처 투성이었지만, 나는 그 좁은 자취방을 제공한 것이 문제일 것이라 생각하며 집을 옮겼고,

방의 1/4를 차지하는 큰 캣타워를 사줬다.

침대 프레임을 맞춤 제작해서 고양이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사 간 내 집은 사실 인간보다 고양이 집에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바를 해야만 했다. 용돈만 받아도 충분했던 내 삶에 몇 백에 가까운 돈이 깨지기 시작했으므로.

나의 시간도, 인간관계도, 기회도 꽤 많이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교환학생을 포기해야만 했다고 하더라도,

내 몸이 너덜너덜해져야만 했다고 하더라도,

내 돈을 다 써야만 했다고 하더라도ㅡ

돼-지.


아직도 생각하면 마냥 따끈따끈하고 안쓰러운 내 첫 고양이.

그때보다 20배는 더 커졌지만, 나의 돈을 더 가져가고 시간을 더 가져가도 괜찮으니까 오래오래 살았으면.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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