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살기 (3)

슈퍼스타는 못 되더라도 까는 두려워하지 말자

by 가람

P는 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P는 예전부터 지병이 있었기 때문에 정신과(정확한 표현은,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끔 방문하곤 했는데, 저보고 종종 병원을 가보란 말을 하더군요. 처음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4학년의 어느 날 정말 문득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집 근처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약이 꽉 찼차서 당일 방문으로는 진료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신겅간의학과 진료 예약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약을 잡고 다른 날 방문을 했죠.


우울증은 보통, 이전과 비교해서 내가 우울해 졌다면 우울증이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정신과에서 문진을 작성했을 때, 우울 지수가 그다지 높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전과 비교해서 ~ 합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억나지 않을 때부터 저는 무력하고 우울했으니까요. 저는 그 전까지 저의 내밀한 감정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얘기할 거리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처음 상담할 때부터 의사분께서는 제 감정이나 상태를 과거부터 헤집어가며 집요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느끼셨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느끼셨어요? 얼마나 힘이 없으세요? 저녁엔 뭘 하세요? 이런 것들이요. 이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 안에 소용돌이가 휘몰아 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문답 속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너무도 나를 방치하고 살았다는 것을요.


담담한 얼굴로 의사분은 약을 처방하고 다음 날짜를 잡았습니다. 저는 생전 먹을 생각도 못했던 ‘우울증’ 처방약을 들고 건물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엄청 이상하더라고요. 슬프기 보다는 제가 안쓰러웠습니다. 지금은 꽤 연민 어린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전까진 자기 연민을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전부 바보 같은 제 잘못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프다고 하니까 이때까지 엄청난 무기력을 겪어 온 제가 처음으로 안쓰럽더라고요.


처음 약을 먹을 땐 솔직히 효과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했어요. 성실하게 무언가를 할 만큼의 에너지도 없고, 루틴이라는 게 없이 자고 싶은 시간에 잤기 때문에 약도 좀 들쭉날쭉 먹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조-금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그 때부터 약을 먹으면서 서울시에서 지원해주는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무료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의 상담사분을 만났죠. 한번은 상담에서 과거 얘기를 하다가 오열한 적이 있어요. 창피하게도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다고 울었죠. 상담사분이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공부가 하기 싫었으면.. 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더 오열했습니다. 그 상담사님은 아직도 기억에 나는 게, 본인은 한평생 회계 관련한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데, 당시 마음의 병이 걸려서 퇴사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쌓아두면 마음에 병이 된다고, 잘려도 괜찮으니 저보고 막 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겠냐며, 나를 누르고 있던 어깨 한 편에 있던 짐(죄책감 등)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담도 받고, 힘든 일도 하고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의사분께 조울증 증상도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리튬을 처방받을 때, 굉장히 낮은 확률로 알러지성 반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그게 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복용한지 한 달쯤 되었을까요?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대학병원을 들락날락거렸고, 그래서 한동안 정신과 약을 안 먹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몸이 흉하니 할 것이 없어 집에서 푹 쉬고, 심심하니 달리기를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라, 제 마음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던 내가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무기력하고 우울한 친구가 어느 날부터 안 보이는 거에요. 두드러기 때문에 끊었다가 정신이 건강해진 걸 알아버린거죠.


예전에 우울했던 저는 소설을 쓰곤 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Opus’라는 곡을 피아노로 녹음한 버전이 있는데 이걸 반복 재생으로 들으며 우울한 나와, 그 곁에 있는 너에 대한 소설을 썼습니다. 그때 제 안에 있는 검은 그림자 같은 친구를 알았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아무리 울어도, 기뻐도, 화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 때문에 가슴이 종종 갑갑하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검은 그림자 같이 무력한 친구가 나이려니 했는데, 그 친구가 곧 나는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한순간에 사라지더군요. 그렇게 저는 우울증을 뒤로 하고 꽤 그럭저럭 살아냈습니다. 빠르게 시간이 흘렀고, 벌써 그 친구가 사라진 지 3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제목에 적힌 나의 생각의 편린을 말씀드리기 위함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개인적으로 살자고요. 너무 이타적으로 살아서 저처럼 스스로를 갉아먹지도 말고,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서 남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도 말고, 개인으로서 개인답게 살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왜 ‘큰 피해’라고 지칭하냐면요, 제 생각에 작은 피해는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다리 떨어서 남이 약간 신경쓰이는 정도랄까요. (그것을 피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정도도 통제하면 저의 자유는 없는 거잖아요.


꼭 나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하나요?

나는 그저 나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런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껏 적어온 글에 적힌 이유를 포함한 다양한 사유들로 남에게 맞추며 살아온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저 나로서 살기로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슈퍼스타는 까와 빠 모두를 미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누군가의 사랑을 특출나게 받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인물 중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인물이 페이커(Faker)인데요. 리그 오브 레전드(롤) 경기를 보면 정말 채팅창이 난리가 나요. 페이커를 간절히 응원하는 팬들과, 페이커를 무시하는 팬들로 나뉘죠. 그런데 그렇게 모범적으로 잘 살아오고 경기 성적도 좋은 인물마저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제가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컨트롤 하겠어요. 동시에 저를 그렇게 까는 사람도 없으니 저는 슈퍼스타가 아닌 거겠죠. 무관심하면 까도 안 생기는 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살아도 이기적으로 살고 싶진 않습니다. 살면서 ‘더 이타적으로 살아야지’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단지,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개인으로서의 나를 계속해서 존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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