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詩 中心

by 허니

어쭙잖은 솜씨로 써 왔던 글을 묶었다

책을 받은 친구는 술 한잔 건네주며 사인을 해 달란다

이 책의 특징은 저자 사인이 없는 거라고 했다


사인하기를 거절하는 작가와 사인받으려는 작자의 시간

술잔이 제 스스로 잔을 비우면서 허무의 계절을 넘는 공간


신기하게도 책에 있던 글들이 식탁 위로 쏟아져 나왔다

고향을 물어볼 수도 없는 멸치나 외로운 섬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는 망망한 바다에서 끝도 없이 헤엄쳤다

요즘 같은 가을이 왜 행복하냐고 많이 웃었다


친구는 한층 얄팍해진 책을 옆구리에 끼고 한마디 한다

라면 냄비 받침으로는 딱!

남아 있는 글 몇몇이 그를 따라나섰다


물론, 사인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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