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 한모금
# 코코넛 한모금
ᅠ무인도로 들고온 짐을 풉니다. 정글도, 해먹, 텐트, 카메라, 선글라스, 선크림, 옷과 타올 몇 장, 낚시도구, 못, 루프, 옥수수스프.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려 최소화 한다는 것이 그래도 배낭 하나가 꽉 찹니다. 마실 물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물을 구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ᅠ
ᅠ그러나 현실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드라마와 현실의 줄타기에서 매번 실패하곤 합니다. 민물이 나오는 계곡따윈 현실의 무인도엔 없었습니다. 땅을 아무리 파도 물은 나오지 않아ᅠ떠내려온 페트병에 숯과 자갈, 돌과 풀을 넣어 만든 정수필터가 무색해졌습니다. 비는 내릴 기미가 없고 끓는 물에서 얻은 몇 방울의 물이 전붑니다. 굵은 고무줄로 한방울찍 떨어지는 증류수를 먹다 진만 빼는 오후였습니다.ᅠ
ᅠ나무 아래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코코넛을 봤습니다. 척척 나무를 올라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퇴로 없는 자신감의 마지막 단계입니다.ᅠ그리 높지 않은 야자수엔 누군가 열매를 따기 위해 발을 디딜 홈까지 파여져 있습니다. 두세 걸음을 엉금엉금 기어 오르다 절반도 가지 못해 내려왔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에게 나무를 오르는 것은 상상불가의 영역입니다. 뭐 그리고 그만큼 목이 마르지도 않습니다.ᅠ
ᅠ해가 구름을 덮고 낮잠을 자는 동안 증류수 몇 방울을 더 마셨습니다. 물을 짜낼 생각만하고 가만히 있었던 처연한 오후입니다. 증발하는 잎의 수분을 모으기 위해 잎사귀에 덮어둔 비닐엔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물이 조금 고여있을 것입니다. 코코넛은 주렁주렁 매달려 시원한 물이 가득차있었습니다.ᅠ
ᅠ다시 나무에 오릅니다. 아까보다는 더 높은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사람이라면 가슴팍까진 올라온겁니다. 야자수의 갈비뼈를 붙잡고 더 오르려고 발을 허우적거리다 결국 다시 내려옵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준 팔이 저립니다. 괜히 모닥불에 장작을 더 넣어 불을 쎄게 지펴봅니다. 냄비 뚜껑에 맺힌 몇 방울을 컵에 모아 혀로 목을 축이는데 울컥.ᅠ
ᅠ목마른 남자를 남겨두고 해가 졌습니다. 한 모금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급한대로 마신 바닷물이 새벽이 되니 속을 비틉니다. 땡볕에 몸 속 많은 물을 내어줬다가 바닷물을 넣어주면 이렇게 되나 봅니다.ᅠ입술은 텁텁해지며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썬크림이 갈라진 틈으로 들어갔는지 타들어가는 입술의 마지막 유언인지 흰 길이 입술 위로 생겼습니다. 천 킬로가 넘는 사막을 두 발로 가면서도 목이 말라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었는데 사람이 무인도에서 죽는 이유는 물때문이란 확신이 듭니다.ᅠ
ᅠ스트레칭을 하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나무에 오릅니다. 나무를 비추도록 렌턴을 해변에 꽂아두고 담넘는 도둑처럼 살그머니 나무에 오릅니다. 이 시간이 올때까지 했던 것은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코코넛을 수확하여 마시는 상상과 수건을 이용해 나무를 오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다리가 후들거리는 지점부터는 수건을 나무에 두르고 양손으로 각각 수건의 끝을 잡아 당기며 오릅니다. 손바닥으로 코코넛을 받치고 열심히 줄기를 돌리니 드디어 해변 모래 위로 물이 가득찬 코코넛이 떨어집니다.ᅠ
ᅠ간절하면 되나 봅니다. 목이 말라 죽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본적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 나무에 오르게 한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 긍정적인 사람만은 아니어서 간절하면 모두 이루어진다고 말할 순 없지만 확실히 근처에 다가가긴 하나 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입니다. 간절함 그 다음 단계까진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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ᅠ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 문제였거든요. 올라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내려오는 것은 걱정거리도 아니었는데 하강해야만 하는 사실이 더 겁이 납니다.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속절없이 미끄러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니 벌써 다리가 오들거립니다. 올라올 땐 감당할수 있는 거리마다 홈이 파여져 있었는데 내려갈땐 발 디딜 곳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10분이 흘렀습니다.ᅠ
ᅠ어디에도 갈 곳 없는 나무에 매달려 오르는 것만 생각했던 하루를, 야자수 나무의 끝만 보고 달렸던 근육을 잘라냅니다.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떼지어 절벽으로 떨어지는 물소처럼, 더 달리는 힘을 상상하지 못하고 딱 골인 지점까지만 바라보고 뛰는 달리기 선수처럼 저는 뒷모습을 보지 않고 튀어 올랐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항상 진짜는 내가 생각한 경계의 끝에 있고 나의 지점 너머에 있었습니다.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달리거나 숨을 참고 물 속으로 잠수를 할 때에도, 이보다 더 큰 시련은 없다고 했을 때에도 그 다음을 생각했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요, 충분한 준비를 했을텐데요.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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ᅠ북극성 눈치를 보며 떠오르던 작은 별들의 빛까지 마침내 이 섬에 도달했습니다. 여전히 나무에 매달려 있고 목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힘을 풀고 미끌려 내려옵니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다 쓸렸고 팔뚝은 곳곳이 상처입니다. 한 모금의 코코넛 물을 마시기 위해선 내려올 때 쓸 잔근육과 적당한 간절함, 너머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ᅠ
ᅠ
ᅠ다음 날, 한번 더 나무에 올라 열 개의 코코넛을 땄습니다. 어제 설치해 둔 표지판 덕분에 다치지 않고 목을 축였습니다. 한번에 너무 많이 마셔 설사를 합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이정표를 꼽았습니다.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