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줄을 내리며
ᅠ배를 타고 나갑니다. 지나간 배 뒤의 양쪽으로 흰 거품의 길이 생깁니다. 그 길은 생긴 순서대로 먼 쪽에서부터 바다로 내려앉습니다. 차례차례 한단계씩 내려앉지만 지나치게 자연스럽게 차례로 무너져 마치 하나의 길처럼 보입니다. 부드럽게 바다로 스며들어 거품과 바다의 경계를 알 수 없습니다. 그 거품을 보는게 좋습니다. 세밀하게 세계가 무너지는걸 볼 수 있으니까요. 잠시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세계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표면부터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는 나날입니다.
ᅠ결국 세상의 침몰을 멈추는 것은 제 역할입니다. 팔라완의 무인도인 해적섬(Pirate Island)에 들어가다 배를 멈춰 세웠습니다. 도미노로 넘어가던 거품벽들이 마지막으로 배의 뒷전과 부딪치고 더이상 쓰러지지 않습니다. 아직 잔해가 남은 배의 뒷전으로 낚싯줄을 내리기로 합니다.
ᅠ추가 엮인 낚싯줄을 내리는 것은 마치 구조대를 투입하는 과정같습니다. 허리에 단단히 끈을 엮어야 합니다. 풀리지 않도록 꽉 묶은 후 사람들이 올라타고 탈출할 수 있도록 후크도 내려줍니다. 낚시바늘을 바다에 내리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올라탈 고리를 잘 볼 수 있도록 눈에띄게 표시도 해줘야 합니다. 어두운 물 속에서 반사될 수 있도록 끈도 연결해줍니다.ᅠ낚시 바늘과 함께 묶어서 내리면 물에서 반사되는 가짜미끼라는 겁니다. 헬기에서 줄을 내려 사고현장에 뛰어드는 구조대원처럼 낚시바늘은 가능한 먼 곳에서부터 작전을 수행하러 갑니다. 왠지 배와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고기가 잘 잡힐 것 같아 있는 힘껏 줄을 던집니다. 천천히 조금씩 가장 아래로, 바닥까지 무사히 내리고서야 안심을 하고 안내방송을 합니다.ᅠ
ᅠ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렇게 간절히 기다렸던때가 또 언제일까요.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제가 할 일은 사람들이 모두 탑승해 후크가 묵직해지면 들어 올리는 일뿐입니다. 구조용 고리 앞에서 탑승권을 두고 갈팡질팡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조금전 먼저 탑승한 분들 중엔 그래도 이곳에 남는게 더 안전할 것 같다며 내린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 구조대원과 여러개의 구조고리 중 어느 것에 몸을 맡겨야 안전할지를 고민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저는 고민중인 그들을 모르고 너무 일찍 구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낚시 줄을 빨리 들어올린 겁니다.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낚시줄과 고리를 바꾸기로 합니다. 구조 헬기를 바꾼 것입니다. 성능과 크기가 다양한 헬기를 다시 투입합니다. 길고 튼튼한 낚싯대를 내립니다. 하지만 이번엔 줄이 엉켜버렸네요. 급한 마음에 당장 풀릴것 같은 줄들을 잡아당기니 더 엉키기 시작합니다.
구조대원들 중엔 꼬인 줄을 보고 인생이란 이런 것이지라며 도를 튼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급히 풀려고 할수록 엉키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먼저 구조되기 위해 이기적인 모습을 띄는 이의 최후를 보거나 선량한 이들이 먼저 죽는 상황을 너무 많이 봐서 퇴직 후 심신안정을 위해 절로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도 있고요. 가짜에 현혹되어 홀린듯 끌려나가는 모습도, 잠깐의 방심에 목숨을 잃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어서 병원에 간다고 합니다. 엉뚱하게 구조를 하고서도 경찰에 잡힌 구조대도 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통제와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 않은 지휘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ᅠ고민을 하다 더 급하다고 판단되는 재난지역으로 갑니다. 고기가 많은 곳입니다. 배의 엔진을 켜고 내달리다 발견한 현장. 저마다 흰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곳이었습니다. 아무렴 이곳이 더 급하단 생각이 들었고 혼자 뿌듯해했습니다. 다른 배들의 접근을 불허하고 검증되고 인증된 헬기만 사고지역으로 내보냅니다.
내 손에서 모든 것이 컨트롤된다고 여겼는데 줄은 끊어지고 바늘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엉킨 줄과 끊긴 바늘은 말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구조했는지에 대해 이 자라에서 물어본다면 말하진 않겠습니다. 물고기는 다 놓쳤지만 아직은 그리 배가 고프지 않거든요. 아직은 내가 세상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이번 실수를 모두 잊을겁니다. 뭔가를 낚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이보다 쉬운 일은 없습니다. 넓은 바다가 보고 있지만 어차피 저를 탓하는건 잠시일겁니다.
ᅠ저도 압니다. 아니, 모르겠어요. 그러니 더이상 묻지 마세요.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