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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일간의 동행 그리고 이별...(5)

힘겨운 항암치료가 기분 좋게 시작되고...

"분당서울대학교병원으로 출퇴근을 시작하고"...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바람도 쏘이고 할 겸 미리 도착플랫폼으로 내려와 우두커니 서있었다. 광명역 플랫폼은 물론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공간들은 온통 저마다의 방식으로 2017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아쉽게 떠나보내려는 연말분위기에 가득 차있는 상황임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하루가 지났지만 크리스마스라는 성탄절의 사랑과 축복의 기운이 여전히 환희 불 밝힌 곳곳의 기념트리와 장식들에서 충만해 보이는 가운데 보이는 들마다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얄밉도록 나름의 행복감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는 듯 연말연시의 환한 얼굴들만이 부러운 듯 보이고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금 이렇게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 죽고 싶은데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싶은 멍청하고 바보 같은 피해의식 같은 생각들만이 순간 스쳐간다.  


저기 멀리 아버지와 엄마를 태운 기차가 힘찬 기세로 플랫폼으로 미끄러지듯 환한 불을 밝히고 반갑게 다가온다. 오늘은 평소 외롭게 혼자 매번 부모님 마중을 하던 때와는 달리 집사람이 광명역으로 함께 동행해 주어 부모님을 마중하는 일이 수월하고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늘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겹쳐서 오는 법인가 싶은 생각이 근래에 많이 들던 참이었다. 오래도록 일 해오던 회사도 맡은 일들도 그리고 불필요한 가족들 간의 불화도 그렇고 말이다. 엄마야 원래부터 심장수술이니 당뇨병이니 아픈 사람이었으니 무덤덤하였는데 안팎으로 총체적인 어려운 시기에 결국 나에게는 늘 큰 버팀목이던 아버지까지 많이 편찮으시게 되니 왜 이런 일이 한꺼번에 생긴 것인지 참 뭐라 표현하기 조차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잔인한 연말이 되고 있었다. 


기차가 멈추기 전 잠깐의 시간에 집사람은 자기야! 이제 울만큼 울었고 놀랄 만큼 놀랐고 했으니 다시 차분히 마음을 다잡고 내일부터 아버님 항암치료에나 힘써보자 좋은 결과 있을 거야! 검색해 보니 폐암말기 판정받고도 완치된 사람들도 꽤나 많다더라 뭐! 폐암에 좋은 음식과 민간처방도 많이 내가 찾아뒀어 걱정하지 마! 그래 지금 나에게 진정 위로가 되는 말과 기운을 주는 집사람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어 고마워! 그래야지. 기차는 정시에 도착하여 경쾌하게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고 내가 사준 검은색 롱패딩점퍼를 입고 환한 얼굴로 아버지는 엄마의 손을 잡고 제일 먼저 기차에서 내리신다. 이것저것 집에서 챙겨 온 멸치와 미역 그리고 베지밀음료까지 뭐 하러 이런 것을 무거운데 들고 오셨는지 짐이 한 가방에 손에 들린 작은 박스도 하나 있다. 아들 며느리 맛보라고 과메기도 그 와중에 들고 오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몸도 안 좋은 분이 멀리 서울병원오시면서 이런 거는 뭐 하러 들고 오셨어요? 서울에도 다 있는데 참 나! 말을 안 들어요. 투정 부리듯 화를 내는 철없는 아들에게 환희 웃어 보이며 아들도 며느리가 좋아하니까 아비가 들고 왔지! 허허 춥다 어서 들어가자...


평소보다 더 나는 조잘조잘 쉴 새 없이 이것저것 물어댔다. 집에는 동네에는 별일 없죠? 식사는 어떻게 잘하셨는지? 통증은 없고요? 열이 안나야 내일 항암주사를 맞을 수 있는데 감기기운은 없으시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쉬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대며 달려왔다. 포장해 둔 족발과 뼈해장국등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아이들과 저녁밥을 맛나게 먹고 내일 있을 항암치료에 대해서 나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듯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내일부터 항암주사를 총 2주 간격으로 6회를 맞으셔야 한데요 주사 맞는 동안 식욕이 떨어져서 다들 힘들다고 하니 뭐든 억지로 라도 식사와 간식을 잘 챙겨드셔야 해요. 그리고 힘들지만 포항에서 2주 간격으로 왔다 갔다를 하셔야 되니 무엇보다 두 분 다 체력관리를 잘하셔야 되겠지요. 엄마도 특히 그렇고... 조금은 걱정스러운지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간혹 드라마나 티브이에서 암판정을 받고 아픈 사람들이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제일 먼저 머리가 모두 빠져버리고 기운 없이 기진맥진하는 것을 많이 보아온 터라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주변의 지인분들이 여러 명이 암이란 질병으로 고통받고 떠나시고 하는 것을 너무 자주 보신 터라 약간의 항암치료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버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항암치료는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고 다들 하네요. 그래도 요즘은 약이 많이 좋아졌고 의술이 좋아졌다고 하잖아요. 보험혜택도 있고요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한번 해보자고요. 혹시나 해보시면서 많이 힘들면 그때 가서 또 이야기하시죠 뭐! 모든 일은 첫 경험이 참 중요한 것이라 내일이 어떨지 적지 않은 부담과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한 해의 마무리를 3일 앞두고 집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와서 항암치료 상담과 항암주사 치료를 시작하였다. 항암병동에 별도로 마련된 항암주사실은 한 층 전체가 항암치료를 위하여 운영되는 곳이었고 아버지도 접수를 하고서 별도의 침대를 배정받고 주사를 맞기 위한 순서를 기다렸다. 굳이 항암치료에 대하여 아버지께 시시콜콜 어렵게 설명해 드려 봐야 별 도움도 안 될 것이고 그냥 주사 6회에 방사선 6회 정도 하시면 다 끝이 나요 그러면서 체력관리만 잘하시면 된데요... 마치 아버지에게 거짓말로 사기를 치듯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쯤으로 설명하고 긴장감속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 이름이 붙은 침대를 배정받고 노련한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를 팔에 연결해 주면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장장 4시간에 걸쳐 항암주사를 천천히 지겹도록 맞고 잠시 거부반응이 없는지를 살피시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분 좋게 일어나 엄마가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뭐 해보니 별것도 아니네! 주사 맞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그렇지 생각보다 힘든 거는 전혀 없는데! 할만하네. 첫 항암주사를 잘 맞고서는 오히려 아버지의 기분이 많이 좋아지신 듯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물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1주가 지나고서부터 찾아오는 식욕부진과 약효과로 진짜 힘들어진다는 것을 아버지도 나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항암주사를 맞는 4시간 동안 아버지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경상도 남자들의 무뚝뚝하고 꼭 말로 해야 하냐는 식의 구닥다리 겉치레는 내던지고 나는 쉼 없이 아버지에게 질문하고 듣고를 반복하며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아버지 회고록의 목록을 하나 둘 채워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래 항암주사 맞으면서 대충 정리하면 되겠네!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힘든 항암치료는 아직은 기분 좋게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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