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산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증과 기대를 안고 목적지로 향한다. 버스 창밖으로 천문산이 스친다. 장가계에 와서 천문산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경치는 칠성산이 더 아름답다"는 가이드의 말로 마음을 달랜다.
천문동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이라는 설명에 잠시 창밖을 살피는 사이, 버스는 고개를 넘어 칠성산 입구에 닿는다.
산행은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케이블카가 서서히 상승한다. 출발지는 점점 멀어지고, 건너편 천문산은 더욱 또렷해진다. 아직까지는 칠성산의 특별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케이블카가 꽤 가파르다는 사실만 실감 날 뿐이다.
십여 분 뒤 종점에 도착하자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산정으로 향한다. 이어서 모노레일까지 이용해 더 오른다.
산 하나를 오르는데 케이블카와 버스, 모노레일까지 동원된다. 얼마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지 짐작이 간다.
마침내 정상이다.
유리 전망대 앞에 서니 안개가 옅게 드리워져 있다. 잠시 후 시야가 열리며 건너편 천문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1520미터.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흐릿하게 이어지는 무릉산맥의 웅장함 속에 운무를 걸친 천문산의 수많은 봉우리와 발아래 깊은 계곡을 채운 안개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안내판에는 "장가계 시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천인합일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고 적혀 있지만, 하늘을 덮은 운무 때문에 시내까지는 시야가 닿지 않는다.
이곳에는 바둑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이 산에 바둑을 아주 잘 두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노인과 바둑을 두게 되었고, 하늘의 별을 따 바둑돌로 삼아 대국을 시작했다. 신선은 쉽게 이길 것이라 여겼지만 노인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밤새도록 바둑을 두었지만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신선은 별을 모두 써버렸고, 마지막에 일곱 개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칠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 풍경 앞에 서면 그 이야기가 그리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셔틀버스를 타고 유리잔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사방이 안개로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 막을 걷어내듯 시야가 열린다. 건너편 수직절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 낸다.
그 풍경은 압도적이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절벽과 깊은 골짜기. 일행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이 터져 나온다
왼쪽 절벽에는 잔도가 이어져 있다. 천길 낭떠러지, 깎아지른 절벽 위에 길을 낸 모습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사람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작업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도대체 어떻게 공사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절벽 아래쪽으로 공중사다리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안전고리를 걸고 있겠지만, 그 아래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허공이다. 눈으로 보고 있는 내가 더 아찔하고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아주 강심장이거나 일부러 담력을 시험해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도전으로 보인다.
나 같으면 공짜로 시켜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도저히 못할 것 같다.
허공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관광객의 공포와 담력까지 여행상품으로 만들어낸 발상이 더 기발하다.
잔도는 원래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험준한 산악지형에서 군사와 물자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절벽에 나무를 박아 길을 냈다.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길로 바뀌었다.
유리 잔도 위에 올라선다
발아래로 아무것도 없다. 바닥이 아니라 까마득한 허공이다. 몇백 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절벽이 투명한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그대로 드러난다.
머리로는 안전하다는 걸 알지만, 몸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시선은 자꾸 아래로 끌리고 심장은 요동친다. 혹시라도 유리가 깨질세라, 나도 모르게 유리판을 피해 철골 위만 골라 밟는다. 그 짧은 거리조차 십 리 길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바닥을 닦는 직원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일상일 이곳이,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말 그대로, 공포와 일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유리잔도 끝자락에 이르자 사진사가 카메라를 들고 말을 건넨다. 손사래를 치고 지나쳤지만, 잔도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니 저금 전 손사래 치던 내 모습이 이미 화면에 떠 있다.
불과 몇 분 전인데 벌써 사진이 나와 있다. 속도가 놀랍다.
사진 속 내 모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일행과 함께 다시 돌아가 몇 장을 더 찍는다. 사진을 받아 들고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웃음이 터진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장면들로 기억된다.
장가계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이유는 단순히 자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풍경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체험형 상품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다인 476만 명이라고 한다. 자연유산은 중국만큼은 풍부하지 않을지라도, 우리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분명히 높아지고 있다.
이 흐름을 잘 살핀다면 우리만의 관광 자원을 더욱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 가치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칠성산의 풍경은 오래도록 눈에 남겠지만,
기억 속에 더 깊이 새겨지는 것은 그 풍경을 여행상품으로 빚어낸 발상과 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