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을 바라보던 왕비
단종의 마지막 생을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넘겼다.
영화는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인물은 단종이 아니다. 마을 촌장 엄흥도(유해진)다.
역사 기록 속에서 엄흥도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실록이나 야사에서도 그의 이름은 겨우 한두 줄 정도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역사의 조연이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발상이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낸 듯하다.
평소 영화관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주연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내 머릿속에 남은 인물은 단종보다도 엄흥도였다. 그러다 문득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인물이 떠올랐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定順王后)였다.
정순왕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궁금증이 주말 아침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다. 정순왕후가 살았던 곳, 그리고 매일 올랐다고 전해지는 동망봉을 찾아 나섰다.
정순왕후의 삶은 짧은 행복과 긴 세월의 인내로 이루어져 있다. 열다섯 살에 왕비로 책봉되었지만 이듬해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면서 그녀의 왕비 생활은 불과 1년 남짓에 그쳤다.
왕비에서 노산군부인(魯山君夫人)으로 강등된 그녀는 정업원에서 생활하며 매일 이곳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남편이 사면되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지만 남편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고, 청계천 영도교에서 이별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남편이 영월에서 죽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 뒤로도 정순왕후는 평생 이곳에 올라 영월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봉우리 이름도 동망봉(東望峰), 동쪽을 바라보는 봉우리라 불리게 되었다.
정순왕후는 세조가 보내준 양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거친 음식을 먹고 직접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모진 세월이었지만, 세월은 또 다른 역사의 장면들을 그녀 앞에 펼쳐 보였다. 세조가 병마에 시달리고 그의 자식들은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했다.
정순왕후는 세조보다 53년을 더 오래 살았다. 그녀는 82세에 생을 마쳤고,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왕비로 기록되었다. 모진 세월이었지만 긴 생을 살며 원수가 몰락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복수를 한 셈이다.
정순왕후는 남편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인 해주 정씨 집안 묘역(남양주)에 묻혔다. 단종은 영월에 잠들어 있다. 부부는 죽어서도 함께하지 못했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남편과는 570년째 이별 중이다. 아이러니하게 철천지원수였던 세조의 무덤(광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동망봉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흐렸다. 하늘은 뿌옇고 바람은 차가웠다. 봉우리 위 배드민턴장은 텅 비어 있었고 동망정에 올라서도 앞은 희미하게 흐려 보였다. 설령 날씨가 맑다 해도 앞쪽에 들어선 아파트들 때문에 정순왕후가 바라보던 풍경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서 있었던 자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고 의지할 곳 없이 긴 세월을 견뎌야 했던 자리다. 처음에는 이곳에 올라설 때마다 가슴 깊이 맺힌 한을 삼켰을 것이다. 왕이 몇 차례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이곳을 오르내리는 일이 그녀에게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작은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동망봉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영월과 보이지 않는 한 왕비의 시간이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