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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내 고개

by 하영일

청계산 산행의 주요 출발지는 원터골과 옛골이다. 원터골은 접근이 쉬워 언제나 등산객들로 붐비지만, 옛골은 원터골에 비해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한 탓에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최근까지 이어지던 무더위가 수그러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덕에 특별한 일정이 없던 오늘, 모처럼 청계산 옛골을 찾았다.

애초에 이수봉에 오르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하늘 가득 드리운 시커먼 먹구름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갈까 말까 망설이며 등산로 입구 쪽으로 걷는데, 그동안 무심히 지나치던 도로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달래내로 369번 길"


아, 여기가 바로 달래내 고개였구나.

오래전부터 이 길을 몇 번이고 지나쳤지만, 이곳이 '달래내 고개'라는 사실은 이제야 깨달았다. 이곳에 오면, 마음은 늘 청계산 꼭대기로 향해 있었기에 이 길은 시선 밖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청계산이 아닌 ‘달래내로’에 눈 맞추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옛길이 넓어 보이고 세월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언덕길을 오르는 자전거 동호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알록달록한 복장에 값비싸 보이는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모습. 그 풍경은 달래내 고개를 넘나들던 조선의 성들이나, 전설 속 오누이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이 길 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경부고속도로 상에 놓인 달래내 고개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영남대로의 첫 번째 고갯길인 동시에 한양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달래내고개 옛길 고갯마루

옛날 이 마을에 '달아'와 '달오'라는 남매가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달오가 누나를 보러 시냇가까지 왔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듯이 쏟아졌다. 동생을 보고 반가워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는 달아의 모습은 비에 흠뻑 젖어 몸매가 다 드러난 여인의 모습이었다.


비에 젖은 누나의 몸을 보고 성적 욕구를 느낀 동생이 죄스럽게 생각하여 자신의 생식기를 돌로 찧어 죽고 말았다. 누나는 자신의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이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차라리 달래나 보지" 하며 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하여 '달래내 고개'라고 불린다.

'달래내 고개'는 전설 속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지만, 경부고속도로가 뚫린 이후에는 교통 정체로 더 자주 언급되는 지명이 됐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명절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와 TV뉴스에서 달래내 고개 정체 소식을 들을 수 있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나 운전자들도 한때 전쟁터 같은 공사 현장이었고, 슬픈 전설에 대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곳이 고갯길이라는 사실조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의 가장 높은 지점이라야 고도 백여 미터 남짓이니, 자동차를 타고 가면 고갯길로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수레를 끌고 고갯길을 넘던 시절에는 결코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고갯마루에 설치되었던 봉수대만 보아도 이곳이 한양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단지 교통 체증의 상징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우리 선조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역사적 통로였던 것이다.

한기영 병장 순국비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이곳 달래내 고개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전 구간 중에서도 손꼽히는 난공사 지점이었다. 공병대가 투입된 세 구간 중 한 곳이 바로 이 고갯길이었고, 현장을 지휘하던 육군 대위는 "우리의 적은 달래내 고개다 무조건 뚫어라"라고 외치며 공사를 독려했다.


군인들은 마치 전투에 임하듯 이 고갯길을 뚫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마침내 준공 일정에 맞춰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공사 도중 한 젊은 병사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 후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에 그의 넋을 기리는 순직비가 세워졌다.

비석에는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공병의 얼 고속도로와 더불어 영원히 빛나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만약 그 병사가 살아있었다면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터, 긴 세월 흘렀지만 비석 앞에 놓인 꽃송이가 그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말고 있다. 한기영 병장의 숭고한 희생과 공병대 장병들의 헌신 덕분에, 오늘도 수많은 차량들이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늘 비록 산정에 오르지 못했지만, 고갯길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슴 깊은 곳에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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