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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섬 같은 산, 수암봉

수리산 수암봉 산행기

by 하영일

수리산은 군포, 안양, 안산 세 도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사방이 도시로 둘러싸인 도심 속의 섬 같은 존재다. 해발 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관모봉, 태을봉, 슬기봉, 수암봉이 반원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그 중앙에는 깊고 넓은 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수려한 경관과 생태적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수리산은 남한산성, 연인산에 이어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사시사철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 아래로 제1외곽순환고속도로의 수리산, 수암터널이 뚫려 있고, 수원광명고속도로의 수리산 1, 2 터널이 지나며, 광명에서 출발한 KTX 지하 구간도 이 산을 통과한다. 수도권 남서부를 지날 때, 어느 방향에서나 눈에 익은 산이 바로 수리산이다.


수리산의 네 봉우리를 모두 오르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정도로 긴 거리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체력이 받쳐줘야 완주할 수 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시간 날 때마다 한 봉우리씩 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아직 가 보지 못한 수암봉을 목표로 삼았다. 안양이나 군포에서는 관모봉이나 태을봉을 많이 오르고, 안산에서는 수암봉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수리산의 가장 깊은 곳인 수암계곡을 경유하는 특별한 길을 걷겠다"는 생각으로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한다.


차가 안양시내를 지나 병목안으로 접어든다. 왼쪽에는 병목안공원이 보이고, 양옆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다. 병의 목처럼 좁은 입구를 지나면 골이 넓게 펼쳐지는 이곳을 '병목안'이라 부른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이런 계곡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다.


수암천 계곡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수리산 성지'라 적힌 큰 석물과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곳인지 궁금증이 생겨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성당 마당으로 들어선다.


조선 후기 기해박해 시기, 최경환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을 했고, 생계를 위해 담배를 경작해 '담배촌'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이곳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여길 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한다.

현재는 천주교 성지로 지정돼 천주교 신도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최경환 생가, 성례마리아의 집 등 천주교와 관련된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마을버스도 다니고 등산객들이 많아졌지만 그 시절엔 사람 발길이 드문 오지였을 것이다. 관군의 눈을 피해 은신하기에 딱 좋은 지형이라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계곡을 따라 올라가자 주차장이 나타나고 도립공원임을 알리는 큰 돌비석이 보인다.

이곳은 수리산에서 가장 깊숙한 지점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직진하면 슬기봉, 뒤쪽으로는 관모봉과 태을봉, 오른쪽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수암봉으로 이어진다.


이정표를 보니 수암봉까지 1km 남짓, 가볍게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객들 몇 명 만날뿐, 조용한 오솔길이 계속된다.

한적한 이 길은 시끄러운 도심을 벗어나, 등산객들에게 고요하고 평온한 사색의 시간을 안겨 주는 산행코스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는 후덥지근 하지만 마음은 이미 수암봉 꼭대기에 올라 있다. 인터넷에서 봤던 시원한 조망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으면 서해바다까지 보인다고 하지만, 오늘은 하늘이 그리 맑지 않아서 어떨는지 모르겠다.


20분쯤 오르자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산객들에게 물으니, 안산에서 올라오는 길이라고 한다. 여기서 왼쪽은 군부대 지나서 슬기봉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은 수암봉 방향이다. 수암봉 쪽으로 몇 발짝 걷자 평평하게 만들어진 헬기장이 나오고, 그 뒤편으로 수암봉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 전망대에는 몇몇 사람들이 얼쩡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는 더워졌고,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흐른다. 시원한 조망과 선선한 바람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흙먼지 팍팍한 언덕길과 나무계단 지나 마침내 정상에 이른다. 바위 위에 세워진 '수암봉' 정상석이 나를 반긴다.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인 조망이 펼쳐진다. 지나온 계곡 아래로는 외곽순환도로가 지나고, 관모봉에서 슬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양시내와 서울까지 조망되며, 북서쪽으로는 광명과 인천까지 이어진다. 수리산 네 봉우리 중 조망은 이곳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전망대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안산과 시흥 방향 도심이 훤히 보인다. 날씨만 좋았다면 저 멀리 서해바다까지 보였을 텐데, 희뿌연 하늘에 바다가 숨어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준수한 풍경이다.


이로써 수리산 대표 봉우리 네 곳 중 세 곳을 정복했다. 멀리서 수리산을 바라볼 때면 슬기봉 옆에 있는 군부대의 둥근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통신대인지,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가까이 가 보지 못하고 궁금증만 더 키운다. 다음엔 저 슬기봉에 올라 그 궁금증을 풀어야겠다.

시원한 경치로 눈을 즐겁게 한 수암봉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서둘러 하산길에 오른다.

수암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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