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다른 시간에 모두가 살아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었는데, 조직안에 체제안에 집어 넣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건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게 되는 불편한 시간이다.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어른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어. 음, 표정들이 밝지가 않아. 아이들도 밝지가 않아. 그게 과연 내가 밝지가 않아서 일까?
화가 나있는 한 사람이 있었어. 화풀이를 뜬금없이 근처에 있는
어떤 사물(매달려있는 작은 종) 을 시끄럽게 때리는 것으로 표현했어. 화가 날때 주변의 사물을 발로 차거나 손으로 때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몰라서 그렇게 표현하는 특성을 지닌 아이들은 많이 보았는데, 그것이 어른으로까지 이어져서 하는 행동을 보았지.
보통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누군가가 그러한 특성을 보이는 것은 유전인가 개별성 고유성일까. 사람이 모두가 다른데, 갈수록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것도 답답하다.
검색능력이 다 뛰어나졌지. 검색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사색능력이라고 하는데, 사색한 것을 적용하는 사색적응능력도 중요한 것 아닐까?
어쨌거나 그래서 그 화가 나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그는 밝은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답답함은 0세부터 죽기 전까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어. 누군가와의 시간을 갖고 대화로 그의 마음을 풀어주었다면 그냥 잘한 거 같아. 스스로를 칭찬해주게 되었어. 이런 시간도 저런 시간도 가치있는 시간이라고 말해주면서 말이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결핍이 성장하면서, 어떤 재능이 성장하고 있을거야. 결핍만 바라보지 말고, 그 결핍 속에서도 감사하는 말을 물을 따르듯 채워놓는 시간, 어른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이상해. 그래도 그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 아름다운 것은 그 사실을 너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야.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네 안에서 아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시간이야. 나에게 구체적인 시간이 타인에게 추상적인 시간이라는 것이 될 수도 있어. 어떤 누구라도 누구의 소유물은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