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01~108 필사
1. 인간과학 비판
물리학과 생물학이 현상들을 반동적인 힘으로부터 해석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앞에서 보았다. 그런데 니체는 인간과학에서도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해석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에서는 유용성, 적응과 같은 개념들이 주도적인 개념들로서 사용되고 있다. 어떤 행위를 유용성이나 해로웅ㅁ의 견지에서 고려하는 자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말할 때 그렇게 행동할 수 없는 자이다.
그는 능동적인 행동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구경을 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그것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이익의 견지에서 그 행동을 파악한다. 능동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자만이 어떤 행동을 자신이 생존하는 데 혹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적응하는 데 그것이 유용하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용성과 같은 개념들은 수동적인 개념들이며 그러한 개념에는 반동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
2. 새로운 질문의 형식
따라서 니체는 어떤 현상의 본질을 물을 때 우리는 '그것은 무엇이냐'는 식으로 물어서는 안 되고 '그것은 어느 것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것이냐'라는 물음음 주어진 현상 내지 사물을 붙잡고 있는 힘들은 무엇이고 그것을 점령하고 있는 의지는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것이냐'라는 물음에 의해서만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왜냐하면 본질은 사물의 의미와 가치이기 때문이며 사물의 의미는 그 사물의 이면에 있는 힘이고 가치는 그 힘에 친화성을 갖는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의지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대상이나 어떤 목표나 목적이 아니다. 목표와 목적, 심지어는 동기들까지도 여진히 징후들일 뿐이다. 의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질들뿐이며 그 자신의 성질이고 그것에 상응하는 힘들의 성질이다. 의지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유형이다. 그것은 능동적으로나 반동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유형이다.
힘은 흔희 표상의 대상으로 해석된다. '의지는 지배권력을 욕망한다.'는 표상과 권력의 관계를 매우 밀접해서 모든 권력은 표상되고 모든 표상은 권력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의지의 목표는 표상의 대상이 되며 그 역 또한 진실인 것이다. 홉스에서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표상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헤겔에서도 의식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우월한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 모든 경우에서 지배권력은 표상의 대상이며 의식들의 비교를 전제로 하는 인정의 대상이다. 그러한 비교의식에서 작용하고 있는 동기는 허영심이나 자삼, 자기에, 자신의 열등성에 대한 느낌이다. 니체는 힘 자체를 인정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우월한 자로서 표상되고 싶어 하는 자를 병자라고 부르고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귀한 인간은 역사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필히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즉 아득한 옛날부터 모든 형태의 예속적인 사회계층에 속한 평민들은 다만 타인들이 평가하는 대로 존재하는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주체적인 가치부여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주인이 자신들에게 부여해준 가치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자신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인의 권리였다).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일반인들이 항시 자기 자신에 관한 좋은 세평을 기대하고 또 본능적으로 그것에 굴복하는 현상은 하나의 거대한 격세유전적 현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좋은' 평판에만 굴복하는 것이 아닐 악평이나 부당한 평판에 대해서까지도 굴복한다...
이제 사회 전반에 걸쳐서 민주주의화가 서서히 진행됨에 따라(주인과 노예의 통혼이 원인이 되어)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려는 충동, 본질적으로 고귀하고 희구한 충동은 점차로 장려되고 넓게 확산되어 갈 전망이다. 그러나 보다 오래되고 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보다 뿌리 깊은 한 가지 성향이 항시 이러한 충동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이 뿌리 깊은 성향이 '허영심'이라는 현상 속에서 새로운 성향을 억누르고 있다. 그러한 허영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간에...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또한 좋지 않게 얘기하는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한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비집고 나온 뿌리 깊은 복종 본능에 따라 좋고 나쁜 평판에 굴복하여 자신의 그것들에 예속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즉 니체는 명예나 타인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노예로 존재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주체적인 자기평가를 하지 못하고 주인으로부터 인정받기만을 원했을 때의 노예본능이 유전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인정받게 하려는 의지는 필연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들인 권력, 돈, 명예, 명성 등을 획득하려는 의지가 된다. 따라서 홉스에서 헤겔에 이르는 힘에의 의지 개념은 이미 정립되어 있는 가치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의지의 철학에서 보이는 것은 순응주의이다. 이렇게 이미 정립되어 있는 기존의 가치들은 어떤 식으로 퍼지게 되는가? 들뢰즈는 그것은 전투와 투쟁을 통해서 퍼지게 된다고 본다. 즉 그러한 가치로부터 이득을 획득하려는 사람들 간의 전투와 투쟁을 통해서 그러한 가치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공고하게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들뢰즈는 투쟁, 전쟁, 경쟁, 혹은 비교와 같은 것은 니체와 그의 힘에의 의지 개념에는 전적으로 낯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들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들은 투쟁에 의해서 힘들과 의지들 간의 진정한 위계질서를 전복한다. 따라서 투쟁은 힘들의 능동적 표현도 긍정하는 힘에의 의지의 표현도 아니다. 투쟁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수단이다. 왜냐하면 약자들이 숫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체가 다윈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유이다. 다윈은 투쟁에 의해서 강자는 약자를 이긴다고 보았지만 실은 투쟁은 약자를 선택하고 그들의 승리를 보장한다.
힘을 표상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힘을 추구하는 의지에서 어떤 모순을 본다. 홉스에 따르면 힘에의 의지는 자신이 무한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여기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힘에의 의지를 이러한 착각에서 구해낼 수 있다. 헤겔은 주인의 상황이 갖는 비현실성을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주인은 노예이 인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표상된 힘은 단지 가상이 되며, 의지의 본질은 가상 속에서 자신을잃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신을 정립하지 못한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의지에 어떤 한계를 설정하려고 한다. 그 한계는 그것을 살 수 있게 하고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것이 되는 합리적인 또는 계약적인 한계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낡은 철학을 그것의 궁극적인 한계에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형성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사물들과 세계의 본질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로서의 의지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객관화이며 따라서 표상 내지 가상이다. 그것은 본질로서, 자신을 반영하는 가상을 의욕한다. 이에 따라서 세계는 의지와 표상으로 나타난다.
들뢰즈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칸트에서 시작된 신비화가 발전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의지가 사물들의 내적인 본질로 간주되면서 전통형이상학을 지배해 온 구분, 즉 감각적 세계와 초감각적 세계의 구분은 사라진다. 우리에게 감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감각적인 세계는 그러한 감각적인 세계의 이면에 있는 의지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인 세계와 초감각적인 세계의 구별을 부정하면서 세계는 다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본질과 가상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홉스나 헤겔에게서 보는 것처럼 단순히 의지를 한정하는 것만으로는 쇼펜하우어에게 충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지는 부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니체는 의지에 대한 부정이나 의지를 합리적인 계약이나 상호인정에 의해서 제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의욕하는 것은 해방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의지의 고통에 맞서서 니체는 의지가 즐거운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미 정립되어 있는 가치들을 꿈꾸는 의지에 맞서서 의욕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힘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표상되지도 측정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힘에의 의지는 본질적으로 창조적이고 증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열망하지도 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증여하는 것이며, 힘은 의지 안에 존재하는 표현 불가능한 어떤 것,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하며 형성하는 어떤 것이다. 힘은 '증여하는 미덕'으로서 의지 안에 존재한다.영원회귀가 생성을 긍정하는 존재이듯이, 힘에의 의지는 단일하면서도 다수성을 긍정하는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