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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빠뇽금영 Oct 02. 2023

꼬마야, 왜 그래?

초 저녁쯤 되었을까! 

산책을 하러 나간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 쪽으로 엄마와 아들 같아 보이는 두 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너무도 있을법한 상황이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가는데, 바로 앞 상가 앞에 꼬마 한 명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순간 넘어져 있는 줄 알고 일으켜 주러 옆으로 갔다. 


"꼬마야 왜 그래, 넘어졌니?" 

꼬마는 아무런 댓 구도하지 않았다. 나는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다시 한번 물어보고 꼬마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가만 보니 꼬마는 방금 우리와 스쳐 지나간 두 모자의 식구였고, 쭈그려 앉아 있었던 건 넘어진 게 아니라 꼬마 앞에 놓인 커다란 돌을 옮기려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꼬마가 왜 돌을 옮기려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꼬마야, 왜 엄마랑 같이 안 가고 혼자서 이 큰 돌을 옮기려 하는 거야? 그러다 다치겠다." 

꼬마는 나의 두 번째 질문에 드디어 입을 열어주었다. 

"여기 아래에 끼었어요." 

나는 그 순간 꼬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뭐가 끼었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그리고 뒤로도 여러 차례 질문을 통해 꼬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꼬마는 엄마 그리고 형과 함께 길을 가다가 돌 틈에 끼어 자라고 있는 식물을 발견하고는 그 식물이 아플까 봐 가던 길을 멈추고 식물이 아프지 않게 돌을 옮기려 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꼬마에게 답을 들은 남편과 나는 약속이라도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우리가 도와줄까?" 

꼬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하며 대답을 했다. 우리는 꼬마와 함께 식물이 눌리지 않을 만큼 돌을 앞으로 옮겼다. 그제야, 

"감사합니다"  

하고 웃으며 한참 앞에 가고 있는 엄마와 형을 따라 뛰어가버렸다.

"맘이 이쁜 꼬마야, 잘 가!" 

우리는 꼬마의 등 뒤에 대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돌아오면서 남편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꼬마처럼 순수한 눈과 마음이 우리에겐 언제 사라진 걸까? 

'성경에, 아이들만 같으면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했는데.... 어쩜 같은 상황 속에서 어른들은 그냥 지나치고 아이 눈에는 그게 그렇게 보였을까? 분명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랐다. 또 엄마가 가버리면 혼자 남기 무서워 그냥 따라가거나 도와 달라 했을 텐데 그걸 혼자라도 하겠다고 저러고 있었을까? 싶어 마냥 대견하고 소름 끼치게 감동스러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이와 비교하자면 나이로 보나 인생경험으로 보나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생각하는 것이 월등히 발전되었다는 건데 순수성은 왜 이리도 퇴보되었을까 하는 현실에 진심 부끄러워 스스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나마 우리라도 지나치지 않고 도와줘서 꼬마를 웃으며, 맘 편히 달려갈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꼬마는 식물에 관심을 두었기에 돌이 보였던 게 아닐까? 다시 말해 식물에  맘을 썼다는 거다.

어찌 보면 어려운 게 아니다. 대상을 향한 '관심'이 있고, 없고, 의 차이다. 관심은 어떤 선물을 한 것보다 감동적이고,  긴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삶의 고단 때문인지 자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얼버무리고 "내가 몰라서, 바빠서, 힘들어서" 란 이유로 관심의 대상을 무관심으로 멀리한다. 


그냥 지나치다 만난 한 꼬마로 인해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지도 생각해 보고, 누구든 무엇이든 관심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 건지,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자그마한 아이에게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배움에는 나이로 스승과 제자를 구분하면 안 된다는 말이 맞는구나 싶어 슬그머니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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